출판사 서평
오카 마리의 질문, “이것이 왜 세계사가 아니란 말인가”
가자 지구에서 우크라이나까지, 홀로코스트에서 식탁 위 기아까지
유럽-중동-아시아를 잇는 ‘글로벌 히스토리’로 새로운 팔레스타인을 만난다
“이것은 집단학살 전쟁범죄이며, 우리도 외부자가 아니다!”
- 팔레스타인은 왜 ‘우리 모두’의 문제인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문제에는 근대 500년 세계사의 여러 모순이 응축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25만 명이 갈 곳을 잃고 난민이 되었고, 유엔은 이 유대인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만들 것을 결의했다(1947년 11월). 그 직후부터 팔레스타인에서는 점령, 집단학살, 강간, 강제추방 등 대대적인 ‘민족청소’가 벌어졌고, 그 결과 팔레스타인 주민 75만 명이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었다. 즉 유엔은 25만 명의 유대인 난민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75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난민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청소’한 땅에서 ‘유대 국가’임을 내세우는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1948년 5월). 세계가 나치 독일이 저지른 범죄의 뒤처리를 위해, 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도록 한 것이다. 유엔은 이후 8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는 분쟁의 씨앗을 스스로 뿌렸고, 그 부정의는 이제 가자(Gaza)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집단학살 사태에 이르렀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집단학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유대인의 홀로코스트와 시오니즘(새로운 땅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사상)을, 홀로코스트와 시오니즘을 이해하려면 러시아와 동유럽의 ‘종족 민족주의’를, 나아가 오늘날의 전쟁과 기아를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만들어온 세계적 연결망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 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학살하는가.
2023년 10월 7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전투원들이 이스라엘 영내로 넘어가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이스라엘의 끔찍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이슬람 조직 하마스(Hamas)의 테러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위 전쟁”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가자 지구는 이미 1967년 이래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있었고, 2007년부터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봉쇄가 지속되면서 ‘세계 최대의 야외 감옥’으로 불려왔다. 그럼에도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은 집단학살 연구자들이 “교과서에 실릴 만한” 전형적인 집단학살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공격이었다. 또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기아로 가자 지구 주민의 절반 이상이 괴멸 상태에 이르러 지금은 절멸수용소나 다름없다.
사람만 대량 살육되는 것이 아니다. 지중해 세계에서 인류 문명의 역사를 중층적으로 일궈온 가자 지역의 역사적인 모스크와 교회, 박물관, 도서관 등이 표적이 되어 무너졌다. 역사적 진공 지대로 만들어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역사적·정치적 존재를 지상에서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1948년 이래로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돼온 민족청소(점진적인 집단학살) 완수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 유대인 ‘(민족)청소’가 어떻게 팔레스타인인 ‘청소’로 이어졌는가.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라는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 또한 단편적이다. 일반적으로 홀로코스트는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자행된 컨베이어 벨트식의 체계적인 살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유대인 ‘청소’와 팔레스타인인 ‘청소’가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동유럽 지역에서 일어난 배타적 ‘종족 민족주의’와 ‘민족청소’의 폭력이 시오니즘 탄생의 배경이 되었고, 이들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자신들이 당한 것과 똑같은 폭력을 자행한 것이다.
원래 독실한 유대교도는 처음부터 시오니즘을 비판하고 반대해왔다. 이에 대해 시오니스트들은 “유럽에서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은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죽임을 당한, 기개를 잃은 유대인”이며, 반면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싸우는” 자신들을 “새로운 유대인”이라고 했다(그래서 이스라엘로 건너간 홀로코스트 생환자들은 멸시를 받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건국 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유대교도가 이스라엘로 이주하자, 이들 다종다양한 유대인을 어떻게 ‘국민’으로 통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겼다. 그때 ‘발견’된 것이 홀로코스트였다.
이스라엘은 “언제 제2의 홀로코스트가 발생할지 모른다”면서, ‘유대 국가’ 유지를 위해 점령을 확대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즉 ‘박해받은 유대인’이라는 피해자 서사로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을 독점하고 특권화하면서, 시오니즘 비판 자체를 반유대주의라고 공격하며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 ‘유대인의 나라’를 꿈꾼 시오니즘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결탁해갔는가.
그런데 이들 시오니스트들과 결탁한 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의 반유대주의 세력이다. 애초에 시오니즘 운동을 지원했던 영국도, 또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분할하기로 결의한 것도 “그들은 본래 유럽 사람이 아니고 팔레스타인에 있던 자들이니, 그곳에 그들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합당하다”는 인종주의에 근거한 인식 때문이었다(유럽에서 떠나주기를 바랐다). 특히 독일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의 징표로서, 희생자인 유대인의 조국이라 자칭하는 이스라엘을 정치적·군사적으로 계속 지원하고 옹호해왔다(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간주하며 탄압했다). 이러는 가운데 또 다른 희생자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거듭된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를 배우기 위해
이 외에도 이 책은 현재 세계의 두 전쟁, 즉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우크라이나는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간 유대인들의 고향이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위치한 한 폴란드 서점을 통해 우크라이나-폴란드-이스라엘을 잇는 동유럽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정착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또한 우리 식탁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실상을 식민주의와 거대한 곡물 카르텔, 식량을 무기화한 기아(飢餓) 정책 등을 통해 살펴보면서, 이러한 폭력이 팔레스타인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전쟁과 폭력이 우리 일상의 ‘작은 역사’ 곳곳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유대인 집단학살이 단지 종교 대립이 아니었듯, 베트남과 아일랜드와 알제리의 독립 문제가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니었듯,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문제 역시 종교 대립도, 영토 싸움도 아니다. 우리는 가자 지구 집단학살과 팔레스타인 민족청소를 ‘이슬람 테러 조직’ 대 ‘이스라엘의 자위권’의 전쟁으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맞서 문제의 근원을 확실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의 지식을 만들어온 서양 중심의 지역별로 분할된 역사를 대신할 ‘새로운 세계사’다. 즉 근대 500년의 역사를 거치며 지구적 차원으로 형성된 ‘역사의 지맥(地脈)’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대 세계를 이해하려는 ‘글로벌 히스토리(지구사)’다. 이 책은 그 작은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