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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956년 내 땅의 흙 한 줌과 당신의 머리칼을
다음 소포에 부쳐 주도록 하오

1957년 당신이 아니었으면
나는 사랑의 정의를 바꿨을지도 몰라

1958년 아무리 가물거나 비바람 쳐도
나의 꽃은 언젠가 한번 피리라

1959년 우리 식구 넷을 한군데 뭉치는
이 아름다운 꿈이 실현되기를

1960년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지은 그 음악 속에
나의 사랑도 깃들어 있으니

1961년 당신이 무난히 나의 옆에 오기만을
무한히 빌며
저자 소개
저자 : 윤이상
1917년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랐다. 1955년 작곡가로는 최초로 서울시문화상을 수상, 이듬해 마흔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길을 떠난다. 파리의 국립고등음악원에서 토니 오뱅에게서 작곡을, 피에르 르벨에게 음악 이론을 배우고, 1957년 독일 베를린으로 옮겨가 서베를린 음악대학에서 보리스 블라허에게 작곡을, 슈바르츠 쉴링에게 음악 이론을, 요제프 루퍼에게 12음 기법을 배운다. 1959년 서베를린 음악대학을 졸업, 같은 해 현대음악의 가장 전위적인 실험장인 다름슈타트의 국제현대음악제에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하며 큰 호평을 받는다. 이후 도나우에싱엔 음악제 등에서 발표하는 작품마다 주목 받으며 유럽에서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힌다. 동양의 전통음악을 서양의 작곡 기법에 적용한 독창적이고 우아한 작곡법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윤이상은 살아 있을 당시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등과 함께 유럽 평론가들이 선정한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 ‘20세기 중요 작곡가 56인’으로 손꼽혔으며,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이 선정한 ‘유사 이래 최고의 음악가 44인’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베를린에서 타계했으며, 2018년 3월 타계 23년 만에 유해가 꿈에 그리던 고향 통영으로 돌아와 이장했다. 눌원문화상 (1960), 킬(Kiel)시 문화상 (1971), 독일연방공화국 공로훈장 대십자장 (1988), 함부르크 자유예술원 공로상 (1992) 그리고 독일 문화원의 괴테 메달 (1995)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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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독일에 베토벤이 있다면, 한국에는 윤이상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
윤이상이 쓴 유일한 책!

윤이상은 대한민국보다 세계에서 더욱 이름 높다. 세계의 음악애호가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현대음악가. 그럼에도 한국의 대중에게는 아직 낯선 윤이상을 두고 한 음악가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윤이상 선생님은 교과서에 실려야 하는 분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윤이상 선생님은 반드시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우리 현대음악사에서 중요한 음악가로 기록될 것입니다." - 유희열

전후 대한민국의 복잡한 정치사에 휘말리고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잊혀진 이름, 윤이상.
이 책은 이념과 정치를 떠나 인간 윤이상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동시에, 무엇보다 윤이상이 직접 쓴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유학생활 중에 얇고 작은 항공우편 편지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 넣은 글에는 어떤 평전에서도 만날 수 없고 지금껏 역사의 그늘에 가려 있던 인간 윤이상의 생생한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 진솔한 고백을 읽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인간 윤이상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책 속에서

당신이 이 편지를 받을 날은 내가 서울비행장을 떠난 지 만 2년이 되는 날쯤 될 것이오. 내가 재작년 6월 2일에 서울을 떠났으니까 내가 당신 없이 이곳에 와서 2년 동안 이룬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소.
나의 몸은 한국을 떠날 때보다 좋아졌으며 늙지 않고 당신을 위해서 그대로 있고 나는 작곡 이론 공부를 했고 작품으로서 한국서 착수했던 <관현악 조곡>과 <피아노삼중주> 소품을 파리에서 마치고 그리고 백림 와서 <바이올린을 위한 환상곡>과 <현악사중주> 각 1곡을 작곡했소. 불어, 영어, 독일어의 보통용어가 수월하게 통용이 되며 꽤 많은 지방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소. 그러나 더욱 귀중한 업적은 내가 당신에게 보낸 120통의 편지(평균 5통)이오. 이것이야 말로 나의 살과 피의 기록이며 나의 귀중한 재산으로 아오.
내가 한국에 있으면 2년이란 세월이 그다지 쓸모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여기 나와 2년 동안 나는 무던히 노력한 셈이오. 나는 나를 자나깨나 바라보고 사는 세 사람의 여섯 눈동자, 이것이 나의 눈앞에 어리고 나의 뇌리에 박힐 때마다 내 자신의 등을 밀고 내 자신의 종다리에 채찍질하였소. 이 여섯의 맑은 눈동자는 나의 신앙이며 나의 지침. 여보 나는 당신에게 깊이 감사하오.
p.127 1958년 5월 24일

여보. 나는 지금 유학 시기 중 가장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소. 파리에 있을 때는 그야말로 나의 연구밖에 몰랐고 매일 약 8시간 방 안에서 공부만 했지만 그때는 한 가지만 열중했기 때문에 지금에 비하면 호흡하는 면이 퍽 좁았소. 그러나 지금은 독일어가 거의 자유롭게 도움이 되니 흡수하는 면이 퍽 넓소.
나는 블라허 교수에게서 작곡학에 대한 지도를 받고 루퍼 교수한테서 12음 음악에 관한 지도를 받고 슈바르츠 쉴링 교수에게서 푸가의 지도를 받소. 이것이 매주 한 번씩 계속 되는데 세 사람에게 보일 과제를 완성하는 데 그야말로 눈코 뜰 사이 없소. 내가 유럽에서 배운 것은 참 많으며 나는 현대음악뿐만 아니라 서양음악의 근본과 발전의 초기의 음악에 관한 고찰에도 퍽 깊은 주의를 집중하고 있소.
지금이 나의 유학기의 가장 절정이라 할 수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쓰는 작품은 나의 오랫동안 염원하던 바 여기 대중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을 쓸 것만 같소. 나는 되도록이면 오는 가을에는 쾰른 근방으로 가서, 거기는 많은 도시들이 집중하고 있고 문화기관의 집중지대이니 그곳에서 나의 작품의 발표의 기회를 시험할 것이오.
p.187 1959년 1월 26일

내가 유럽에 온 지 만 3년이 되오. 나는 언제나 성북동 골짜기 송림 사이에다 조그만 초옥을 짓고 화원에 싸여서 창작을 하리라는 꿈을 잊지 않고 있소. 우리 정아와 우경이는 좀 더 도심지가 가까운 데 살려야지. 당신은 나와 같이 있어야 해. 당신은 꽃밭에 물 주고, 나의 점심하고 방 소제하고, 저녁이면 둘이서 팔짱 끼고 별을 바라보고 달을 바라보고. 당신은 늙는 것을 조금도 한탄 말아야 해요. 내가 아무리 젊어 보인다고 해도, 당신의 나이에는 따라갈 수 없을 테니. 그리고 우리는 이런 꿈을 꾸되 언제나 아껴 두고 한번씩 마음속에서 꺼내어 보고 그때가 오기를 애태우지 말고 기다립시다.
우리나라의 정세는 좀 안정이 되었는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내가 퍽 소란할 것 같은데 그것이 염려되오.
안녕. 당신을 끝없이 사랑하는 당신의 낭군이.
p.207 1959년 5월 3일

나는 밖으로 나오자 여러 사람들이 모두 제각기 뭉치어 모여서 연주회의 결과에 대해서 비평하고 있었소. 모두 ‘코레아나’라는 소리 ‘윤’하는 소리들이 들렸소. 내가 지나가자 모두 악수를 청하고 성공을 축하해 주었소. 그리고 당신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지었다고 했소. 주최 측에서 작곡가와 연주가들을 초청했소. 모든 연주가들은 오늘 저녁의 연주회에 당신은 유럽에서 성공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소. 지휘자 트래비스 씨는 나에게 감사한다 하면서 당신 작품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연주에서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고 하면서 감사의 뜻을 표했소.
여보, 나의 마누라. 이날 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 모든 괴로움을 당신과 꿈에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를 이제 3년이 지날 때까지 무엇 때문에 고생했는가? 당신에게 여태 말한 적이 없지만 사실은 나는 파리에서 돈이 떨어져서 밥을 굶을 때가 여러 번 있었소.
한번은 호텔을 전전하면서 돈 오기를 기다릴 때 식당 앞에까지 가서 표가 없어 도로 돌아오고 한지가 몇 번, 며칠 뒤에는 나의 얼굴이 부었었소. 모든 사람들이 묻는 것을 나는 감기가 들어서 기침을 해서 얼굴이 부었노라 했소. 그리고 헛기침을 했소. 나는 오늘까지 이 사실을 나 혼자 간직하면서 나의 길을 걸어감에 나는 언제나 투쟁해 왔소. 급기야 나의 노력은 보답되기 시작했나 보오.
여보, 나는 지금보다 큰 작품을 구상하고 있소. 그리고 우리의 행복이 차츰 우리를 찾아오는 것 같소.
p.228 1959년 9월 6일

나의 마누라, 내가 반평생을 염원하던 나의 목표는 지금 급기야 그 문안에 들어선 것 같소. 그것은 세계적인지는 아직도 내 자신이 인식할 수가 없소. 그러나 작곡으로서 세계 최전선의 수준에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오. 나는 이 일을 더 계속하겠소.
나에게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또 다른 최선의 길이 나를 요구한다면 나는 작곡을 던지고 나의 몸을 던지고 그 길로 달릴지도 모르오. 그러나 한 가지 나의 천적으로 생각하는 확실한 하나의 명백한 사실이 나에게 정착되어 있소. 그것은 나는 죽도록 당신의 낭군이며 당신을 죽기까지 행복하게 하여 주리라고, 나의 이 소망이 하루빨리 실천되기를 바라오.
p.254 1960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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