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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1958년 오사카 출생.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그는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인정받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추리소설에 매력을 느낀 히가시노 게이고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전작을 섭렵. 읽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소설 습작을 하기에 이른다. 대학에서는 전기공학을 전공해 졸업 후에는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작가가 되어 학원물에서 추리, 서스펜스,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경계가 없는 다양한 작품으로 전 세계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1985년 에도가와란포상 수상작인 『방과 후』로 문단에 등장한 그는, 1999년 『비밀』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2006년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을,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주오코론문예상을, 2013년 『몽환화』로 제26회 시바타렌자부로상을, 2014년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제48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을 수상했다. 데뷔 후 5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써냈음에도 늘 새로운 소재,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문장으로 매 작품마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백조와 박쥐』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방황하는 칼날』 『녹나무의 파수꾼』 『백야행』 『가면 산장 살인 사건』 『비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가가 형사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등이 있다.

역자 : 이선희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일본어교육과에서 수학했다. KBS 아카데미 일본어 영상번역을 가르치면서, 외화 및 출판 번역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 『푸른 불꽃』 『신세계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 『방황하는 칼날』 『공허한 십자가』, 나쓰카와 소스케의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이케이도 준의 『한자와 나오키』,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 『즈우노메 인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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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것
끝나지 않을 고통의 시작

어느 날, 평범했던 한 남자의 세계가 산산이 부서진다. 회사원 나카하라는 아내가 잠시 외출한 사이, 집 안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비극을 맞는다. 어린 딸 마나미가 강도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단돈 몇만 엔을 훔치려다 아이를 죽인 범인은 결국 체포되고, 재판을 거쳐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형이 집행된 이후에도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고, 남겨진 자들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너무 큰 상실로 부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었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나카하라의 마음속에는 ‘왜 아직도 이렇게 고통스러운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살인자를 법의 이름으로 처벌했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면, 정의란 무엇일까. 죄를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야 할 사람은 가해자인가, 아니면 피해자의 유족인가. ‘속죄’란 감옥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으로 이뤄지는 것인가.
『공허한 십자가』는 이 질문들에서 시작한다. 단순한 범죄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와 남겨진 자 사이의 심연을 응시하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짊어져야 할 도덕적 책임의 무게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침묵을 깨는 또 하나의 살인
전혀 다르지만 하나로 엮인 사건들

딸의 죽음 이후, 나카하라는 살아남은 자로서의 삶을 가까스로 이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상처는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형사 사야마가 다시 찾아온다. 아내였던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한때 같은 고통을 나누었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는 다시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이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또 유족이 될 뻔했으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지울 수 없는 피로와 절망,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얽혀 있다.
그러나 사요코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녀는 생전에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란 원고를 집필하며, 자신이 겪은 사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범인의 사형이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 그녀는, 법과 정의, 속죄의 본질을 다시 묻고자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밝혀지지 않은 어떤 진실에 다가서고 있었던 것 같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이상한 조각들이 드러난다. 단순한 우발 범죄라 보기 어려운 정황들, 사요코 주변에서 포착되는 의외의 관계들, 그리고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마리들.
나카하라는 다시 ‘그날’로 돌아가야만 했다. 잊고 싶었던 기억, 묻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분노와 죄책감이 다시금 그의 삶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그에게 남겨진 질문은 단 하나. 정말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던 그 사건은, 처음부터 끝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진실을 향한 길 위에서
우리는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는가

조사의 끝은 점점 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얽히며 드러나는 진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정의의 개념을 흔들어놓는다. 범인의 가족이 보낸 사죄 편지, 피고인의 사정을 대신 설명하려는 의외의 인물, 죄를 지은 이와 그를 용서하려는 자들의 엇갈린 의지들. 이 모든 퍼즐은 한 사람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이 만든 법과 감정의 경계 위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공허한 십자가』는 단순히 범죄의 동기와 범인을 밝히는 미스터리가 아니다. 이 소설은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의 의미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정의란 무엇이며, 복수는 어디서 끝나는가. 속죄는 감옥에서의 시간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그리고 끝내 남겨진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인간 사회의 가장 깊고 아픈 질문을 꺼내놓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소설을 읽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완성될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속죄란 무엇인가.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는가.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공허한 십자가』는 그 질문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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