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AI 시대, 우리 시의 지형도를 탐색하다
시와 평론, 노동의 종말처럼 평론의 종말도 올까. 이번 제22집 동인지에서 수요시포럼은 이러한 질문을 던져본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다. 문학과 예술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분야에서 챗을 활용한 시도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한 출판사에서 시집에 실릴 평론을 챗GPT에게 맡긴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과연 이것이 예외적인 실험일까, 아니면 예고된 변화의 전조일까. 이에 수요시포럼은 동인들의 시 5편을 ‘챗 평론가’에게 맡겨 보기로 했다. 인간이 쓴 시를 기계가 읽고 분석하는 시대, 우리는 챗 평론의 효용성과 한계에 대해 독자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번 기획에 수록된 평론은 챗에게 다음 두 가지 방식으로 요청되었다. 첫째는 일반적인 주례사 식 평론, 둘째는 시인의 단점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적 관점의 평론이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묻고 싶다. 기계의 언어는 과연 인간의 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가. 그 평론은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가. 판단은 여러분과 우리의 몫이다.
권기만의 시는 지식과 환상의 결합을 통해 독자에게 낯선 시적 경험을 제공한다. 「행성 기록자」는 에베레스트, 아콩카과, 디날리, 킬리만자로, 옐브루스 등 세계의 고산들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그러나 단순한 지리적 정보에 머물지 않고, 그 사이사이에 ‘1초 동안’ 일어나는 세계적 사건들을 끼워 넣는다. 개미가 알에서 태어나고, 나무가 잘려 나가며, 세슘 원자가 진동하고, 별이 사라지는 시간들이 산의 높이와 병치되며, 세계는 압축된 시간과 공간의 총체로 변모한다. 이는 사소한 1초와 거대한 산맥, 인간과 우주의 차원이 한 화면에서 맞부딪히는 장관을 연출한다.
책 속에서
어떤 배역도 시시한 배역은 없다.
벚꽃 몸살 앓는 경주 해 질 무렵
허름한 천막 식당에서 우리는 돼지국밥을 먹고
벚꽃 아래 운동회 날처럼 자리를 깔고
약장수처럼 신나게 나팔을 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
세상은 허리가 조금씩 아파왔지만
어떤 노래도 시시한 노래는 없다.
소리 없이 저무는 형산강을 보며
벼랑 위 꽃처럼 슴슴한 저녁
우리의 버스킹, 시골 장날 닮았다.
살아서 노래한다는 것, 얼마나 큰 축복인가.
돌아오지 않는 쓸쓸한 생의 이야기들
강물처럼 끝없이 흐르고
세상은 허리가 조금씩 아파왔지만
소리 없이 저무는 형산강을 보며
우리는 신나게 나팔을 불었다.
세상에 어떤 배역도 시시한 배역은 없다.*
― 김성춘 시 「벚꽃 나무 아래 버스킹」 전문
이번 세기 프랑스 사상의 특징으로 이미지론이 있다. 이 현상의 시작이 된 것은 베르그송의 저서 『물질과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이 저서에서 그는 물질을 이미지라 말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르트르와 바슐라르의 이미지론은 각각의 시간론과 불가분한 모습으로, 베르그송에 대항하면서 형성된 경위가 이미지론이 뜨거워진 연유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각각의 철학자에게 독자적인 시간론과 불가분한 모습으로 베르그송에 대항하면서 형성된 경위를 가진다.
다시 이러한 상황을 리뷰하면, 세계에는 여러 사물들의 다양한 이미지가 있다.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고유한 모습(형상)을 가진다. 바꾸어 말하면 그 이미지는 그 사물에 실존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형상은 저마다 들쭉날쭉한데 이것을 간추려 단정한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이를테면 이 세계에는 어디에서든 완전한 원이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원이란 관념을 가진다. 이 능력을 유럽에서는 플라톤의 이데아의 힘(능력)으로 보았다
― 허만하 권두 시론 「메를로 퐁티 언어학의 에센스」 부분
사랑이 있다고 했다 끄나풀이 줄줄 풀려나는 이야기 가슴뛰고 눈물 솟는 이야기 산을 뒤집고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 바다로 우주로 뻗어가는 그래서 쓸 수 없는 이야기 써서는 안 되는 이야기 말할 수 없는 이야기 그러니까 사랑은 숭고하다고 그러니까 거짓말이라고 혹은
태어난 적도 없었지 깊은 구멍에서 기어나와 그늘과 햇살도 역사로 만드는 사람 무덤에다 꽃을 피우는 사람 넘쳐나는 마음에 빠져 죽는 사람의 이야기
이야기를 쓸 때는 감옥이 사라지고 이야기가 없을 때는 머리가 잘렸다
미친 거라고 혹은 위대하다고
― 정월향 시 「거짓말을 하자」 전문
서해의 일몰은 쓸쓸함의 깊이를 알 수 없게 한다. 그 쓸쓸함에서 일어선 갯벌은 제 하반신을 바닷속에 숨긴다. 두려움은 경외심 가득 호기심으로 간절해진다. 고립과 연결이 피아노 건반 위 마을에서 간간이 발생하는 어두운 진실로 하얗게 뒤덮인다.
사물을 감추는 능력으로 안개는 긴 모가지의 동물들을 키운다. 환상이 아니어도 환상이어도 좋을 어떤 천상의 경계를 넘어가는 야릇함은 자주 오지 않는 기분이다. 천사의 다리 위를 지난다. 천사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의 문을 열어 놓는다. 1,004 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은 고립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는 듯 제각기 천국의 신비경을 펼친다.
천 개의 문이 열리고 천 개의 문이 닫혔다
― 장선희 산문 「무한의 안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