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진짜 급진주의자 시인은 사물을
새로운 언어로 명명하지 않고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낸다.
진짜 급진주의자 시인은 글을 쓰거나 말하지 않고
시가 사물에 접근하거나 사물이
인간을 읽고 기록하는 시적 공작물을 만든다.
시인은 쓰기에 열중하는 만큼 그것이 유일한 열정이 아니라는 것.
시는 생각과 실행이 합치는 곳에
종이와 잉크와 낱말이 만나는 지점을 발명한다.
_「세 개의 모음」 부분
『이상한 밤』은 10개의 묶음으로 총 145편의 시를 선보인다.
이 예외적으로 묵직한 시집은 시편 하나하나가 “하나의 단일하고 유일한 개체이면서도” “시집이라는 다양체로서의 집합에서는 제각각의” 기능을 해야 했기에 “최대한 많은 객체”(인터뷰에서)가 소집되어야만 했다. 더불어 평론가 전승민의 제안에 따르자면, “반드시 목차대로 읽을 것을 권한다”. 이는 “한 편의 교향곡을 개별 악장으로 청취할 수 있으나 그 곡을 하나의 음악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악장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해설에서)은 이치로, ‘전체를 위한 하나-하나를 위한 전체’라는 유기적 순환을 체험하는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그의 이번 시집을 읽는 또하나의 방법이자 비유를 제안하자면, 마치 ‘테라리움 전시관’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한 편 한 편을 감상해도 좋을 듯하다. 각기 하나의 고유한 세계이면서 그 세계가 하나로 응집된 장소로서의 시. 물론 이를 감상하는 관객인 우리 역시 전시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나아가 우리 역시 테라리움으로부터 감상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네가 달을 볼 때, 달은 너를 보고 있지 않다.
네가 달을 보고 있을 때 달도 너를 보고 있지만, 네가 보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네가 너를 중심으로 달을 보듯 달도 달을 중심으로―너를 본다.
_「달을 위한 두 개의 모음」 부분
바다는 바다고 해변은 해변이어서
그것들과 너는 고유하고 독립적이어서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서로 설렌다.
_「서로 설렌다」 부분
시는 생래적으로 언어와 시선에 붙박여 있을 수밖에 없기에, 시와 시인은 그 한계 내에서 문학적 장치를 통해 뛰어넘거나 무화시키며 독자와 교감한다. 그러나 채호기의 시는 문학적 장치라 할 법한 그 ‘인간적’인 수사와 기예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듯하다. 차라리 비인칭/비인간의 목소리라고 말해도 좋을 법한 필경사의 쓰기를 통해, 그는 객체를 완전히 그려내고 담아낼 수 없는 불가능성과, 인간에게는 상상력으로 보이지만 비인간에게는 비-상상력일 현상을 쓰는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시를 읽는 재미가 발생하는데, 인간이 사물을 꾀어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흉계에 기꺼이 인간이 연루되는 전복의 향연 속에서, 독자들은 진정한 시적 자유와 에너지를 느끼는 것이다. 시편 하나하나에서 생겨나는 차이와 반복, 주체와 객체가 전도되거나 주체가 사라져가는 소멸의 운동 속에서 “인칭의 물리적인 전환이 아니라 시적 주체가 자신으로부터 물러나 타자화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해설에서)이 발생하고, 그리하여 시와 시인이, 시인과 독자가, 독자와 시가 아름답게 만난다.
무엇에 이끌리는지 모르는 채 우리는 어떤 것들의 심연 가까이로 허겁지겁 달려든다.
사랑은 입술을 내밀고 손으로 거머쥐려는 포옹
에 앞서 빛이 어루만지는 그윽한 시선이다.
몸을 부리지 않고도 돌보고 지키는, 만지지 않고도 만지는 빛의 터치.
_「세 개의 조각」 부분
모든 있는 것의 생각은 열기다.
어떤 것이 문턱을 넘어 먼지가 될 때
먼지가 문턱을 넘어 어떤 것이 되어갈 때
열이 난다. 가장 차가운 것도 되어가는 것들의 불이다.
_「부패는 생각의 힘이다」 부분
채호기의 『이상한 밤』을 읽는 일은 그러니까 시를 읽는다기보다, 이상하고도 기이한 시적 체험에 가깝다. “지금까지 열려 있던 바다의 액체가 순식간에 완전한 침묵의 고체로 닫”힌 장면을 박제하여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강렬한 색상, 완전하고 미친 듯한 햇빛과 빛을 감싸는 검청색의 반복하는 패턴,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동하는 색상, 기하학적 형태, 선과 기호의 구성이 나타나고 반복하며 새로운 패턴으로 진화”(「뱃머리」)하는 언어와 사고의 용융 운동 그 자체를 그려내는 일을 그가 하고 있기 때문. 시로 고정되는 것을 택하느니 시적인 것으로 우글거리는, 다시 말해 시가 아닌 시적인 것으로 살아 움직이는 한 생명체를 채호기는 건넨다.
시인의 앞선 말대로 “진짜 급진주의자 시인은 글을 쓰거나 말하지 않고/ 시가 사물에 접근하거나 사물이/ 인간을 읽고 기록하는 시적 공작물을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이 사물에 접근해 들어가거나 사물이 ‘되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시’를 그는 쓸 수 없다. 기성의 “세련된 언어 감각은 오히려 부숴버려야” 하고, 구태한 질서는 “새로운 시가 나타날 때 그 새로운 시에 의해 부서져야”(인터뷰에서) 하기에 그의 시는 언제나 낯설고 기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그의 시에 절대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다. 채호기의 시가, 그리고 시인이 그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채호기의 시를 읽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독자인 우리는 이토록 ‘이상한 밤’의 체험―‘나’가 ‘나’를 말하는 순간 ‘너’가 되고, 시가 언어로 시를 쓰는 순간 그것은 몸이 쓰는 음악이 되는 기이한 세계로 초대된 이들이다. 이 밤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세계라는 행성의 생태계 안에서 사건적으로 이어지고 해체되며 또다시 연결되는 반복적 변주로서의 얽힘, 그 일렁이는 만남의 우주적인 감각이다. 객체들의 향연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은 시의 새로운 존재론적 우주다. ‘나’는 ‘너’에게로 닿기 위해 이제 천천히, 물러난다.
_전승민 「해설에서」
1. 어느덧 10번째 시집을 묶습니다. 이번 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를 간단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 한 조각 한 조각, 그러니까 한 단어와 한 단어를 잇고, 한 문장과 다음 문장을 이어 쓰면서 하나의 이미지(형태)를 만들어내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한 편의 시가 완성되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게 시집의 건자재가 되잖아요. 비유하자면 영화를 만들 때 장면을 최대한 찍어놓았다가 마지막 편집 과정을 통해 쓰일 건 쓰이고 버려질 건 버려지면서 앞뒤의 순서가 정해지고 비로소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듯이, 시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집을 묶을 때 역시 최선을 다해 때로 시편을 고치기도 하지만, 수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애초에 한 조각을 만들 때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맘에 드는 시집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겠지요. 몇번째 시집인가는 제게는 별로 특별할 게 없는 거 같습니다. 늘 처음 시집을 내는 것처럼 막막하고, 조각조각을 쓸 당시에 좀더 잘 쓸걸 하고 늘 후회하게 되니까요.
2. 『이상한 밤』에서는 총 145편의 시를 선보입니다. 문학동네시인선 중에 가장 볼륨이 있는 시집인데요. 이러한 구성을 하시게 된 이유와 동력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 『이상한 밤』에서는 최대한 많은 객체를 소집해야 했습니다. 그것들이 하나의 단일하고 유일한 개체이면서도 또한 시집이라는 다양체로서의 집합에서는 제각각의 다른 몫의 기능을 해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통상 한 권의 시집의 적당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걸 일부러 거스를 생각도 없고요. 하지만 시집 주제의 특성상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부의 특성은 큰 전체의 시집 속의 작은 단위의 전체로 기능했습니다. 제가 나눈 부는 그런 것과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1부, 2부라 하지 않고 그냥 로마자 Ⅰ~Ⅹ까지 숫자만으로 표기한 겁니다. 독자의 편에서 읽을 때 145편의 시가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읽는 이의 읽는 호흡을 고려해서 단락을 나눈 겁니다.
3. 묵직한 양감에 반해 시의 제목 속엔 모음, 조각, 파편 등을 품은 시편이 많은데요. 그래서인지 이항 대립(들)에서 오는 운동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어에서도 그런 경향이 보이고요. 여기에서 오는 어떤 효과를 의도하신 바가 있으실지요?
→ 해설을 쓰신 전승민 선생님이 아주 정확하게 짚어주셨던데요. 제가 아무리 객체를 잘 표현하려 해도 그 객체의 전모를 드러내는 건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제 시는 그 객체의 한 조각 파편일 뿐이다, 뭐 그런 느낌을 담는 제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민중에 음악의 용어가 그러하다는 걸 발견하고 그걸 빌려다 썼습니다. suite, pezzi, pieces, fragment…… 등등.
4. 작가님의 시를 읽노라면 음악, 미술, 이론 등 타 장르와 깊이 교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때 시가 쓰고 싶어지시는지, 그리고 타 매체에 영감을 받아 시를 쓰실 때 각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시를 항상 경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라는 장르가 따로 있지만, 시는 특히 음악과 미술의 경계에 있습니다. 시는 음악이 되려 합니다. 시는 미술의 이미지가 되려 합니다. 시는 영화적 단편이 되려 합니다. 시가 침묵을 지향할 때도 그냥 텅 빈 없음의 침묵이 아니라 침묵하는 이미지입니다. 시는 시의 고유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음악을 시적이라 하고, 어떤 그림을 시적이라 하고, 어떤 영화를 시적이라 하는 건, 그저 좋다라는 칭찬이 아닙니다. ‘시적’이라는 말은 아직 무언가로 고정되기 전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립의, 망설이는 에너지를 가리키는 겁니다. 그 에너지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형태(개체)가 되는데, 그때부터 에너지는 하향 곡선을 그리며 소멸을 향합니다. 시는 정점에 이를락 말락 할 때의 바로 그 에너지입니다. 아름다움의 에너지도 그와 같은데, 그래서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울 때 시적이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음악을 듣거나 전시장에서 미술품을 관람할 때 표현된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렇게 표현하기까지의 예술가의 의도와 감각과 상상을 엿보는 걸 즐깁니다. 그게 제 창작과 비교되고, 많은 경우 제 창작의 아이디어로 옮겨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5. 작가님만의 ‘시 읽기’ 노하우 한 가지를 알려주세요.
→ 시인은 언어 감각이 뛰어나야 시를 잘 쓸 수 있다고 보통 말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언어 충동으로 씁니다. 그 충동은 시인의 충동이기도 하고 언어의 충동이기도 합니다. 세련된 언어 감각은 오히려 부숴버려야 합니다. 언어 감각은 이미 있는 질서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면서 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 질서는 새로운 시가 나타날 때 그 새로운 시에 의해 부서져야 합니다. 그래서 시는 시의 고유의 특성상 첨단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첨단과 잘 읽히는 것 사이에 딜레마가 생깁니다. 첨단은 낯선 거라서 잘 읽히지 않고, 시인은 또한 독자에게 잘 읽히는 시를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모든 시인이 늘 이런 딜레마로 끙끙 앓으면서 시를 쓸 겁니다. 제 시가 어렵다고 많이들 불평합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시를 이해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말고, 시의 이미지를 그냥 받아들이고 느껴보면 좋겠다고. 실제 시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어떤 화가가 시의 이미지를 그냥 따라가며 읽다보니 머릿속에 그림이 떠오르면서 잘 읽힌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 갓 입학한 손자가 제 시를 그럴듯하게 읽어내는 걸 보며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녹지 않는 장미색 기억은
길이 끝나고 돌이 시작하는 즈음에
기어코 단애를 세운다.
진짜 급진주의자 시인은
비인간이 인간을 읽고 기록하는
시적 공작물을 은닉한다.
아, 노래하려는 순간 숨는 것들.
2025년 11월
채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