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한동안 발걸음이 반사적으로 연못으로 향하곤 했다. 작은 연못에 불과한데 왜 자꾸 그것에 이끌리는 것일까. 물과 연못에 대한 이 매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근저에는 어떤 집단무의식이 자리하고 있을까. 연못에 비치는 나무들과 그 사이에 걸려 있는 새벽달의 청신한 모습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물론 좋았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한 ‘대지의 눈’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설렘도 컸다. 바람이 세찰 때 연못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모습에서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의 선율을 느끼기도 했다. 현악기와 하프로만 연주되는 선율에서 간간히 들리는 하프 소리가 연못의 작은 파란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지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가르치는 『도덕경』의 유명한 대목에 심선연(心善淵)이라는 구절이 있다. 물처럼 그윽하게 마음을 쓰는 덕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물처럼 자유자재로 변신하면서도 연못처럼 그윽한 깊이의 경지―이런 자재로우면서도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가 우리 삶이 근원적으로 희구하는 것이 아닐까. 연못은 이렇게 산간에 들어와 둥지를 튼 마음의 본래적 지향을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연못을 찾아 고요한 물을 응시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물 풍경은 이제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물의 정경이든 연상의 파장을 일으키곤 했다. 어릴 적 여름 폭우가 그친 뒤 개울가에서 뜰채로 새우와 송사리를 잡던 일, 집 근처 저수지에서 물수제비뜨던 일, 동네 인근을 지나는 동진강 수로에서 자맥질하던 일, 홍수로 번진 한강물을 구경하러 갔던 일, 월든 호수에서 땅거미가 질 무렵 수영하던 일, 하와이 바닷가의 백사장에 앉아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의 바다를 바라보던 일 등등이 연못의 물결을 따라 점멸하곤 했다. 이 사사로운 추상들은 다시 그에 상응하는 텍스트의 세계로 옮아가곤 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학작품과 그림들은 이런 마음의 공명이 불러일으킨 느낌과 해석의 소산이다. 사실 어디를 막론하고 스미고 번지는 물의 자재로운 유동성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다른 사람과 본성적으로 소통하려는 욕구와 흡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언어 표현의 다채로움, 곧 수많은 비유, 운율, 리듬, 활음 등과 같은 텍스트를 채색하는 문채(文彩)들은 물의 일렁임, 뒤채임, 파문, 갑작스런 요동, 그리고 서로 뒤엉키며 발설되는 다양한 물소리를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파란의 시학’이란 이 책의 제목은 이런 맥락에서 얻어진 것이다.
- 책 머리에서
지구 표면의 70퍼센트가 물이고,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70퍼센트도 물이다. 자연과 인간, 문명과 사회도 어쩌면 대부분은 물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형태를 변화시키며 스며드는 물의 성질은 어떠한 환경에도 결국에는 적응하며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특성과도 닮았다. 물은 때로는 수증기 상태로 공기 중에 스며들고, 때로는 거센 폭우로 쏟아져 홍수를 일으킨다. 갈증을 적시는 한 잔의 물과 오대양 가득 출렁이는 물이 따지고 보면 같은 물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러한 물의 변화와 상징에 의탁하여 문학과 예술 작품들을 남겼다. 신문수 교수의 『파란의 시학 : 물의 풍경들』은 그와 같은 작품들을 분석하였다. 생명의 원천이며 신화, 전설, 철학의 중요한 의미소인 물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시작으로 윤동주의 「자화상」, 오정희의 「옛우물」,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 박화성의 「홍수 풍경」, 소로의 「월든」,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 이청준의 「이어도」, 허먼 멜빌의 「모비딕」 등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문학 작품들, 거기에 윈슬로 호머의 바다를 소재로 한 회화 작품과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까지, 저자는 다채로운 물의 풍경을 산책하며 미학적 상상력에 기반한 풍요한 지식의 향연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