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적당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자고. 너무 사랑하지도, 너무 슬프지도 않은 마음을 가진 채 살아보자고. 폭설도 폭우도 폭염도 아닌 흐린 하늘이 되어가자고. 옅은 햇빛에 옅게 스민 그림자가 되자고. 거리에 나가서 거리감을 익혔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다가올 때마다 적당한 간격을 두는 법을 배웠다. 방에 식물을 들여 물을 덜 주는 법을, 가끔 햇빛을 맞게 해주는 법을, 종종 손으로 땅을 고르게 펴 주는 법을 배웠지.
적당하다. 왜 이 말이 나를 살게 해준다고 믿었을까. 왜 나는 이번 생에서 적당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을까.
적당한 마음 중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을 배반하면서, 마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리고 언제나 사람 앞에서 서투르게, 사랑 주위를 헛돌며, 그러나 슬픔에 무너지고 싶지는 않다. 가슴팍을 내내 맴도는 이 허기와 허공의 감각으로부터 나아가고 싶다.
봄날은 간다 중에서
만약 감정이 신이라면 나는 이제 아무것도 믿고 싶지 않다. 복잡한 것도 싫고 너무 가벼운 것도 싫다. 나는 적당한 게 좋은데 마음은 그러지 말라고 부추기는 것만 같다. 들끓는다. 이제 아닌 것 같은 사랑에게, 그만 잊고 싶은 슬픔에게도. 자꾸 같은 일을 시킨다. 적응이라도 시키는 것처럼. 그런데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방의 마음으로 중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일, 내 마음이 온전하지 않더라도 하루에 가장 오랜 시간을 쏟아내야만 하는 일들. 나는 오랫동안 그런 일들로부터 도망쳐왔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온전한 마음을 쏟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마음에 조그마한 생채기만 생겨도 지반이 무너지듯 덜컹거리는 몸을 어찌할 수 없는 날이 늘어갔다. 그럴 때마다 생활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12월 중에서
<추천사>
김현(시인)
장대성 시인과 맥주를 나눠 마시며 했던 여러 대화 중에 유난히 ‘대성답다’ 했던 것이 있다. 자신은 일찍 혼인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한 사람의 생활 동반자이자 양육자가 되길 소망한다는 얘기였다. 그리 말하는 대성의 무구한 눈을 보면서 나는 그가 조금 싱겁다, 노숙하다, 미지근하다 싶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참으로 안온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품는 사람(들)과 그를 품은 사람(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대성이 마음먹은 적당함이 ‘대충 통하는 요령’ 같은 게 아니라 ‘들어맞거나 어울리는 알맞음’ 같은 것이로구나 알게 되었다.
알맞은 사람 되기.
어떤 날엔 그 방법을 알고 싶어서 책을 펼치기도 한다. 그게 장대성의 것이라도 더할 나위 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