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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속살 같은 물무늬 자국들

희망이란 이름의 씨앗|아기 돌고래 태오|노란 우산|꽃등 거짓말|엄마 표지판|엄마와 나, 동생의 달|삼십 원짜리 할머니|외할머니의 사과|일침헌一針軒의 겨울|그가 자꾸만 뚱뚱해지는 이유는|달과 함께 차차차|엄마의 둥지|외모 콤플렉스|노을의 집|아버지와 멸치

2부. 유리벽 밖의 사람들

안개의 길|오래된 우정|참사랑|진심의 가치|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며|그 사람 이름은 못 잊었지만 - 박인환 문학제에서|배추밭 그라데이션|죽의 변주|3월에 듣는 녹턴|고해성사|동남이 오빠|눈신발 - 김학선 선생님께|저녁노을이 은행나무 그림을 벽에 그리는 시간|안개 죽다

3부. 선과 면 사이에서

하루에 걸린 모든 생|들꽃처럼 살고 싶었네|신기루 환상통|너나 나나|풀의 콘서트|서리꽃|가난한 애인|서울, 2015년 2월 7일|백석의 사랑, 자야가 부러울 때|외옹치항|물마중|하루 사용법|꿈의 변주|엄마는 호수 - 산후 조리원에서|고추를 말리며 - 복자 씨의 대화 중에서

4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보쌈|비 이름|주전자 마음|사랑충蟲|묵사발을 먹던 날|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용수 그리고 마사코를 위한 축시|족발나무|의암|날고 싶은 모과나무|눈물에 나를 숨겨놓고|삼베옷을 몸에 걸치고 - 마의태자|가을로 가을로

해설 _ 풀의 콘서트, 관계와 시간과 사유의 은유 . 송연숙
저자 소개
저자 : : 정순자
시인 정순자는 춘천에서 태어났다. 『문예사조』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수수꽃다리 엄마』를 냈다. 춘천문인협회 회원, 강원여성문학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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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낮고 작고 외로운 것들이 펼치는 생의 찬가
- 정순자 시집 『풀의 콘서트』

춘천의 고유한 서정과 평범하면서도 치열한 삶의 연륜을 시로 승화해온 정순자 시인이 두 번째 시집 『풀의 콘서트』를 펴냈다. 달아실 기획시집 52번으로 나왔다.

· 시(詩)와 삶, 그 찬란한 ‘기울어짐’의 미학

흔히 문학을 삶의 균형을 잡는 저울에 비유하곤 하지만, 어떤 시인은 기꺼이 한쪽으로 지독하게 기울어짐으로써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정적 영토를 구축한다. 정순자 시인의 신작 시집 『풀의 콘서트』는 바로 그 ‘기울어짐’이 만들어낸 따스하고 단단한 고백록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詩에, 아들에, 기울어져 살았습니다”라고 나직이 고백하며 시집의 문을 연다. 홀로 아들을 키워내기 위해 “논술 강사, 요양 보호사, 박물관 직원, 갤러리 카페지기, 막국숫집 주인”(「희망이라는 이름의 씨앗」)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최전선에서 ‘전쟁 같은 삶’을 버텨낸 시인의 이력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 숭고한 모성(母性)의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그렇다고 시인은 과거의 고단함을 훈장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를 ‘제대한 노병’이라 칭하며, 인생 후반전에 찾아온 평화와 또다시 시에게로 기꺼이 기울어지는 은은한 온기를 보여줄 뿐이다.

· 혈연의 내리사랑에서 ‘유리벽 밖’ 이웃을 향한 연민으로

시집의 전반부(1부와 2부)는 현해탄을 건너 들려오는 다섯 살 손자 ‘태오’의 재롱과 아들 가족을 향한 애틋한 사유로 가득 차 있다. 시인에게 손자는 단순한 혈육이 아니라, 팬데믹의 빗장 속에서 찾아와 “찌질한 윙크”로 마음병을 씻어준 천사이자(「꽃등 거짓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에 싹터준 싱싱한 기쁨의 ‘노란 우산’이다(「노란 우산」).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쓰며 할아버지를 ‘하버러지’라 부르는 손자의 맑은 눈망울을 통해 시인은 지난했던 삶의 가시 같은 상처들을 비로소 치유받는다.

물론 이번 시집이 지닌 진짜 미덕은 극히 개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리사랑이 〈2부. 유리벽 밖의 사람들〉에 이르러 타인을 향한 깊은 연민과 연대로 확장된다는 점에 있다. 시인의 시선은 요양병원으로 향하며 점차 안개가 되어버린 노인의 ‘인식의 소멸’을 아파하고(「안개의 길」), 가난한 시골 정류장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서로에게 권하며 장미보다 고운 참사랑을 실천하는 보살 같은 부부의 모습을 포착한다(「참사랑」).

특히 5학년 시절, 칠판 글씨도 제대로 보지 못하던 자신을 안경점에 데려가 ‘눈신발’(안경)을 맞춰주었던 담임선생님을 추억하는 「눈신발 - 김학선 선생님께」는, 그날의 안경이 평생 세상을 똑바로 보게 해준 창문이었다는 고백을 통해 각박한 현대 사회에 조용하지만 큰 울림을 던진다.

· 관계의 은유와 대지가 부르는 ‘풀의 콘서트’

시집의 표제작인 「풀의 콘서트」가 수록된 3부와 4부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유의 단층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절정을 보여준다. 해설을 쓴 송연숙 시인이 짚었듯, 이 시집을 관통하는 중심 이미지는 ‘풀’과 ‘씨앗’이다.

풀은 자유를 몰라 자유를 말하지 않지만
자유를 몰라서 풀은 언제나 자유롭다

(중략)

바람과 비와 천둥과 번개
그리고 이 풀과 저 풀이 어우러져
소나기처럼 온 땅을 두드리며
우주의 리듬을 타고 흐르는 막춤
- 「풀의 콘서트」 부분

시인에게 풀은 거창한 성취의 대상이 아니다. 물음표 없이 제 개성대로 짙푸름을 채워가고, 대본이 없어도 온 땅을 두드리며 막춤을 추는 존재들이다. “커튼콜 없는 무대인 줄 알면서도 객석 뒷줄에서 긴 휘파람을 날리는 이”가 누구인지 묻는 시인의 질문은, 결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삶을 지탱하고 쓰러진 풀들을 일으켜 세우는 ‘사랑의 연대’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진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게임 앞에서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니 사는 거 거기서 거기”라며 스스로를 “날씨 따라 울고 웃는 빈손의 여행자”로 낮추는 시인의 태도는 달관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하다(「너나 나나」).

· 마른 봉투에 촉촉한 정을 담아내는 시적 구원

정순자의 시편들은 세련된 수사학이나 날 선 이성으로 독자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된장국을 끓이려 멸치 똥을 따는 손끝의 감각(「아버지와 멸치」), 가을볕에 상처 입은 고추를 보며 “내가 사랑해줄게 얼릉 나아라”라고 말을 건네는 다정한 대화(「고추를 말리며」)처럼 철저히 삶의 노동과 공감의 감각을 통해 독자를 끌어 당긴다. 그게 정순자 시의 매력이다.

남편의 50년 우정 값은 20만 원이지만, 슬픔을 당한 이에게 건넨 순간의 진심은 80만 원의 가치가 있다는 구절(「진심의 가치」)처럼, 시인은 “마른 봉투에도 촉촉한 정이 담긴다”는 평범하지만 무거운 진리를 시를 통해 가볍게 눙친다.

인생의 매운 꿈속에서도 여전히 마당 가득 동네잔치 육개장을 끓이던 아버지의 허기진 봉지를 기억하는 이 따뜻한 시인의 기도가, 이 계절 상처받은 당신들의 마음에 은은하게 타오르는 촛불이자,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부싯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능히 그럴 테다.

시인의 말

詩에, 아들에, 기울어져 살았습니다.

‘혼자’가 오래되었을 때, 밥해주고 싶은 남자를 만나 예쁜 딸도 덤으로 받고 또 기울어져 삽니다.

그러다 지금은 현해탄 건너 살고 있는 다섯 살 손자 태오를 마음에 품고 〈사랑가〉를 행복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부디 이 노래를 만나는 모든 분들께도 은은하게 타오르는 촛불 같은 따듯함이 전해지길 기도합니다.

이제 또다시 詩에게 기울어진 채 살아가겠습니다.

내 삶 속에 찐 사랑으로 와서 마음 열어주신,
심상숙, 이명숙, 김민경, 강현숙, 강현덕, 박순의, 전은주, 안유경, 최혜린, 안영선, 이길순, 김현자, 순예, 순실, 교숙, 교식, 교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26년 초여름에
정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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