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일까?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일까?’ 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일 거라고 대답했다. 물론 틀린 대답이다. 우주에서 만리장성은 보이지 않는다. 만리장성은 가장 두터운 지점이라고 해봐야 9미터로, 작은 집 한 채 정도의 두께다. 누구든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일 거라는 생각은 터무니없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데에도 그럴싸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이건 당신이 깊이 생각해봤을 질문이 아니다. 둘째, 당신이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누군가가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언뜻 들었을 수 있다. 인쇄물이나 텔레비전에서 봤을 수도 있다. 셋째, 당신은 뒷부분을 빨리 읽고 싶어서 분명 곧장 질문에 답했을 것이다. 대니얼 카너먼이 이야기한 ‘빠른 사고’의 일종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엇보다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 인간이다. 사진이건 영상이건 만리장성에 감동을 받은 우리는 우주에서도 그것이 보이길 기대한다. 이처럼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감정과 믿음에 의해 이끌리는 편이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매우 이성적인 인간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사실에 근거해,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증거에 기반해 사고한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앞선 질문에서 살펴보듯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첨예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섞여있는 사회정치적 문제에서는 더욱 실체를 알기 어렵다.
우리는 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할까?
: “사실이 아니라 믿음에 의존하기 때문”
《팩트의 감각》 저자 바비 더피는 수많은 온라인 정보와 팩트체크가 가득한 지금을, 역설적이게도 그 어디 시기보다 "착각과 오해의 가능성이 가장 많은 시기"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사람은 현상을 보이는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 하는 대로, 감정이 이끄는 대로 믿는다. 또한 우리는 실제 수치와 동떨어지게 더 비관적이거나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팩트의 감각》에서 대표적인 설문문항인 이민자 수, 10대 임신율, 범죄율, 비만율, 세계적인 빈곤 문제의 동향, 페이스북 이용자 수 등에 대한 여론과 통계 사례를 소개, 분석하면서 실제 통계와 사람들의 믿음 사이 커다란 간극을 보여준다.
인구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몇 퍼센트일까?
추측: 32% 실제: 16%
섹스 일본 15-19세 소녀의 출산율은 어떻게 될까?
추측: 27% 실제: 0.4%
건강 미국 인구의 몇 퍼센트가 비만이나 과체중일까?
추측: 50% 실제: 66%
이민 한국 인구 100명 중 몇 명이 무슬림일까?
추측: 7% 실제: 0.2%
우리의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
: 가짜뉴스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사고 방식
바비 더피의 분석에 따르면 이같은 믿음과 편견은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들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한 인지편향과 외부 자극으로부터 복합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는 우리의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로 우리의 사고방식, 우리가 듣는 이야기 두 가지를 꼽는다.
예를 들어 ‘당신이 살고 있는 국가에 65세 이상 인구는 몇 퍼센트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어쩌면 국가가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거나 인구학적 ‘시한폭탄’에 직면했다거나 젊은 사람들이 부양하기에는 은퇴 인구가 지나치게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디어는 점점 늘어나는 노인 인구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점을 상당히 자주 강조한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어른용 기저귀가 아기 기저 귀의 판매 속도를 추월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어쨌거나 매우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는 우리 머릿속에 끈끈하게 들러붙는다.
이런 사례를 토대로 바비 더피는 우리의 비판적 사고 능력이 기대이하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수학, 과학, 통계학, 그리고 추론 능력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공부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실업률이나 10대 출산율, 은퇴자금이나 범죄율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팩트에 신중하게 접근하기보단 공포에 질리거나 표면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기존 견해, 다시 말해 편향에 의존하는 사고 경로를 가진 탓에 편견과 선입견에 갇혀서 사고하기 쉽다. 한편으로 그가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언론과 소셜미디어, 그리고 정치인들과 기업들을 통해 듣고 판단하는 문제가 있다. 그는 단지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전제하며, 문제를 단순화해 미디어만 비판해서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트럼프의 사례나 브렉시트의 경우도 단지 그들 발화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메시지를 강화하고 퍼트리는 알고리즘, 미디어, 기업, 정보기술, 윤리적 기준 등을 전반적 시스템을 점검해야 하는 사례라는 이야기다.
가짜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책
바비 더피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팩트 감각을 살려주는 열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책 전반에서 다룬 사례들을 종합해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한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것에 대한 환상을 깨고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한다.
미디어에 속지 말고, 감정으로는 받아들이되 판단의 순간에는 신중하게 통제할 것, 냉소주의가 아니라 회의주의를 기를 것, 극단적 사례에 휘둘리지 말 것, 필터 밖 세상을 바라볼 것 등 개인의 사고방식과 관련된 방법에서 시작해 사회적 차원에서 취해야 할 조치까지 다양하게 알려준다. 가짜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더 똑똑하고 사실에 입각한 견해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