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세계유산과 함께 살아가는 순천 사람들
오래된 가치를 오늘로 잇는 이들
조계산 선암사는 아름다운 문화 유적으로 손꼽히는 천년 고찰이다. 그러나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이유에는 태고종 총림으로서 오랜 세월 수행과 교육을 지속하며 한국 불교의 전통을 이어왔다는 사실이 주요하다. 선암사는 오늘날의 편의에 맞춰 무언가를 쉽게 더하거나 바꾸지 않고 자연과 공존하는 가람배치 속에서 수행하는 승가공동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저자들은 이런 선암사의 일상을 가깝게 만나보고자 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스님과 주민들이 함께하는 야생 차 공동 울력과 불교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가 하면, 승려가 되기 위한 수계 과정 모습 등을 통해 선암사의 진면목을 만났다.
매일 불전사물을 울리고 절을 하며 공간을 돌보는 수행을 바라보면 절로 존경심이 솟아난다. 하지만 스님들도 자신을 완전히 낮추고 정진하는 삶이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추위 속에서 꽃을 피워내는 선암매처럼 우리 누구나 어려움을 이겨낸 뒤 꽃을 피울 수 있는 힘을 지녔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우리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정신적 가치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선암사로 거듭 향하는 것이리라.
한편 순천 갯벌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이자, 여러 철새들이 이동하는 중간 기착지로서 지구의 생명 다양성을 지키는 장소이다. 이런 천혜의 자연이 유지되며 세계자연유산으로까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순천 사람들의 보전 활동과 노력 덕분이다.
초등학교 사육장에서 10년간 키우던 한 마리의 흑두루미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며 순천 사람들이 품었던 꿈은 25년이 지나 1만 마리에 가까운 흑두루미 군무로 이어진다. 그동안 갯벌 마을 주민들은 새들과의 공존을 위해 전봇대를 뽑고, 친환경 농사를 짓고, 오래된 염전을 다시 갯벌로 되돌리는 등 많은 노력을 이어왔다. 당장의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목표와 생명의 가치를 우선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빛나는 꽃과 열매가 맺히기까지의 짠하고 내밀한 과정은 식물에 정성을 기울여본 사람만이 아는 법이다. 오랜 시간 지역의 고유한 자연과 역사를 아껴온 생태 문화 활동가들, 사라지고 잊히는 지역의 풍경과 삶을 담아내는 지역 사진과와 기록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깊이 있는 시선으로 갯벌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하나같이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가능성이 번뜩인다.
천년의 시간을 건너온 유물
하늘과 바다로 이어진 생명
오래된 불교 사찰들이 그렇듯 선암사 역시 수많은 유무형의 유산을 간직하고 계승해 왔다. 그 자체로 문화유산인 승선교, 대웅전, 원통전 같은 건물은 물론이고, 통일신라 석탑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탱화, 불상, 범종 등 다 헤아리기 힘든 문화재들이 경내 곳곳에 자리한다. 이 책은 시설과 관리의 이유로 대중에게 공개되기 어려웠던 선암사의 보물 중 일부를 선명하게 담아냈다. 천년을 건너 눈앞에 당도한 과거의 흔적들은 우리가 앞으로 이어갈 유산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선암사에 보물이 있다면 갯벌엔 생물이 있다. 강물이 합쳐지는 곳이자 대륙을 넘나드는 새들의 휴식처인 갯벌은 하늘과 땅, 바다를 잇는 온 생명의 분절점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 김영래 작가는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작은 식물에 주목한다. 그의 스캐노그래피 작업은 치명적인 바다 염분을 속으로 삭여 잎과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겨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염생식물의 한살이를 한 화면에 담아낸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식물의 분투는 갯벌 마을 사람들의 삶과 겹쳐진다.
『산사와 갯벌』은 오랜 수행의 시간이 스며든 산사, 밀물과 썰물이 생명을 길러내는 갯벌을 아우르며 두 세계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조망한 책이다. 감탄과 감사를 느끼게 하는 삶의 장소가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켜주는지 알게 된다.
책 속에서
37쪽
다리 하나, 연못 하나를 허투루 두지 않았던 이들에게 길 또한 그저 오가는 통로가 아니었을 것이다. 삼인당의 둥근 타원형 길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보았다. 바라보기만 했을 때는 금방 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에 섰을 뿐이지만, 분명 처음과는 달라져 있다.
-숲길의 아름다움
53쪽
우리는 흔히 차의 정서를 떠올릴 때 고요하고 은은한 연못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전통 차를 만드는 과정은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바다와 같았다. 선암사 차 울력은 더 많이 더 빨리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손의 감각을 중요시 여기며 자연의 선물을 그러모으는 시간이었다.
-차향이 깃든 봄날의 공부
56쪽
가장 위쪽 석조 물인 상탕은 부처님께 올리거나 차를 끓일 때 이용한다. 두 번째는 중탕이라 하여 음용수로 쓰이고, 세 번째는 하탕이라 하여 세수를 하거나 의복을 빨 때, 네 번째는 허드레탕으로 해우소를 다녀와 손을 씻는 데 사용한다.
-차향이 깃든 봄날의 공부
91쪽
우리의 소란한 삶 속에 고요한 위로와 깨달음을 주는 천년 고찰, 언제든 선암사에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뭉근한 힘이 생긴다.
-산사에서 보내는 하루
120쪽
우리 조상들에게 용은 민화 속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무섭고 어렵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다. 힘이 세고 사납지만 순박하고 익살맞은 면도 있다. 계율을 지키는 엄격한 수행자와 천진난만한 아이를 함께 품은 것만 같다.
-선암사에서 발견한 보물들
152쪽
한 마리 새를 위해 꿈을 꾸었던 마음은 수천 마리의 날갯짓을 지켜내는 약속으로 이어졌다. 순천 갯벌은 공존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매일 지켜내는 적정 거리임을 가르쳐준다.
-한 마리 새를 위한 인간의 꿈
169쪽
옛 어르신들은 집에서 사용할 빗자루를 손수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을 함께한 헤진 빗자루도 쉽게 버리지 않으셨어요. 이 빗자루 하나에 평생에 걸친 손의 지혜와 삶의 태도가 담겨있어요.
-바람에 흔들려도 사라지지 않는 것(유익한 상점_양진아)
178쪽
식물은 원래 염분이 많은 환경에서 사는 것이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럼에도 염생식물은 척박한 환경을 견디고 살면서 지구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아름다운 식물이지요. 신기하면서도 기특하고 참 고마웠어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별을 품은 순천의 풀, 염생식물(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_김영래)
210쪽
영상으로 기록하고 AI에게서 답을 구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저는 글이나 책으로만 담을 수 있는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선일 수는 없지만 책도 필요하고, 점점 더 긴 글은 읽지 않지만 분명 긴 호흡의 이야기도 필요합니다. 그 속에는 몇 십 초의 영상으로 담을 수 없는 고유한 것들이 존재해요.
-시간의 바다에 그물을 던지다(지역기록가_양진석)
237쪽
우리 와온을 다들 낮에 많이 온디, 밤에 한 번 와봐야 돼. 엊그저께같이 물이 첨벙첨벙 많이 들고 달이 밝을 때, 한 10시 경에 한번 와보씨요. 달이 밝을 때 선창에 물이 차서 잡실잡실허고 있으믄 을매나 멋있는디! 밤에 달 밝을 때 꼭 와서 봐봐. 우리 와온이 을매나 이쁜가!
-갯벌의 목소리(와온마을_송종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