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불가능과 시의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며 세계와 연결되다
이것과 완전히 다른 이것이 있고, 이것과 어느 정도 다른 이것이 있다. 이것과 완전히 다른 이것은 애초에 이것과 별개로, 굳이 이것과 다르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단독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다른 이것을 이곳으로 끌어와 이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당연함에 이른다. 이것은 이것이고, 이것은 이것이다.
「청색」 부분
언어와 사물 사이의 틈을 응시하며 낯선 감각과 사유의 지평을 열어온 김뉘연 시인의 『흰흑』이 ‘시-LIM 시인선’의 네 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도전적인 전시와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선보임으로써 매체를 사유하는 예술가이기도 한 그에게 시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다시 사유하기 위한 조건이자 과제”이다. (해설·최가은 평론가)
“흰색에 흑색을 더하면 흰흑색이 된다.” 『흰흑』은 이러한 시인의 말로 시작한다. 최가은 평론가는 『흰흑』의 지침이 “양극의 두 색을 아우르는 중간자적 정의”를 바탕으로 불가능과 가능 사이를 왕복하는 과정을 시로 형상화한다고 설명한다. 자명한 사전적 정의에 기반한 “‘회색’의 한계를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출현하는 작은 가능성”이 독자를 새로운 의미의 지평으로 이끄는 것이다.
『흰흑』의 첫 번째 시 「청색」은 “당연함”이 어떻게 “또 다른 당연함”으로 옮겨가는지를 보여주며, 이러한 “언어의 작동 원리에 대한 정교한 자의식”의 원리를 재료 삼아 시인과 시의 내밀한 관계를 도모한다. 그렇게 시인에게 ‘지면’은 무한한 작은 가능성들을 펼쳐 보이는 “황홀한 ‘만남’의 공간”이 된다.
먼 곳의 ‘저 사람’ 혹은 보이지 않는 ‘그 사람’과의
만남을 도모하는 구체적 방법론
시집 출간에 앞서 문학웹진 LIM에 연재되었던 다섯 편의 시 「청색」 「청색」 「갈색」 「청색」 「청색」에서 단어들은 무수한 조합과 경우의 수로부터 무량한 다양성, 또는 가능성을 가지고 증식한다. 『흰흑』의 지시와 정의로 생성되는 간극은 자유를 만들어내는 구조, 몰입을 끌어내는 제한으로 기능해 동일해질 수 없는 각자의 언어를 연결한다. 소도시에서 시작된 여정은 하천에서 폭포로, 동산으로, 공원으로, 카페, 찻집으로 이어져 집으로의 귀가로 마무리되는 듯 보이지만, 지시는 끝없이 읽는 이로 하여금 백지 위의 문자와 장소, 사물을 만나고 기억을 공유하도록 이끈다.
저 사람을 만난다.
저 사람이 뛰고 있고, 함께 뛰기 시작한다.
저 사람이 멈춘다.
저 사람이 운다. 나는 컵을 든다.
저 사람이 세면대로 향한다.
저 사람이 기침을 한다.
여기는 운동장이다.
컵은 텀블러이다.
세면대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물이 닫혀 있다.
저 사람이 계속 기침을 한다. 그렇게 운다.
기침은 눈물이다. 눈물은 땀이다.
열린 물.
내가 손수건을 꺼낸다. 호주머니에서.
옷에 호주머니가 하나 달린다.
내 옷.
손수건을 건네받는다. 저 사람.
내 손수건.
손이 수건을 만난다.
흘러내리는 손수건.
흐르는 물.
담긴 물.
세면대가 움직였다.
저 사람도. 나도.
손수건도.
나는 호주머니 달린 옷을 펄럭여본다. 작은 바람을 만든다.
저 사람이 손수건을 펼친다.
작은 바람이다.
작은 바람을 나눈다.
여기. 저기.
요기.
저 사람은 나를 만난 적이 있다. 바람이 그것을 불러온다.
나도 저 사람을.
나는 물을 마시기로 한다. 저 사람은 얼굴을 씻기로 한다.
손수건이 저 사람의 얼굴을 덮는다.
그것을 떼어낸다.
- 「저 사람」 전문
‘나’와 ‘저 사람’ 사이에 놓인 것은 독자인 우리의 자리이다. “작은 일의 흔적에 귀 기울이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이 결속을 비트는 보이지 않는 흔적과 마주한다. 앞선 문장을 소환하는 공동의 기억과 함께 현재를 또 다른 현재로 연결하는 김뉘연의 만남은 “매체 간 경계의 와해로 상징되는 혼란과 착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그것은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폐기함으로써 비로소 얻어지는 관계 맺음의 작은 가능성이다.
김뉘연의 시도는 텍스트 사이를 거니는 독자가 사물과 장소, 사람에 붙여진 지시에 얽매이지 않고, 계량할 수 없는 것을 계량하며 만날 수 없는 것을 만나게 해 현실/현재에 고립되어 있는 ‘나’들이 ‘저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흔적을 의식하도록 만든다. 『흰흑』은 흼과 검음 사이의 무한한 공백을 탐색하는 하나의 시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