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번 시집에서 가장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문학평론가 나민애가 해설에서 제시한 ‘사람-꽃’이라는 개념이다. 나민애는 이번 시집의 특징을 “사람에게서 꽃을, 꽃에서 사람을 발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찾는다. 실제로 『다정이 찾아왔다』에는 자연을 바라보다가 사람을 발견하고, 사람을 바라보다가 꽃을 발견하는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인간과 자연을 동일한 생명의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시인의 존재론적 인식이다.
「운수 좋은 날」은 이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화자는 단풍 구경을 떠났지만 정작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단풍이 아니라 노부부이다. 손을 맞잡고 느릿느릿 가을 속을 걷는 두 사람은 어느새 단풍을 대신하는 풍경이 된다. 시인은 그들의 현재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요양원 가지 말고 끝나는 날까지 같이 가자”는 노부부의 대화를 통해 “이인삼각으로 생의 벼랑길 걸어 왔으리라” 헤아린다.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사람의 아름다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단풍이 있어야 할 자리에 노부부가 들어앉으면서 자연은 인간으로 치환되고 인간은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시선은 「싸목싸목」에서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시인은 화순 적벽을 보러 갔다가 수몰민 출신 해설사를 만나게 된다. 적벽의 절경보다 그 여인의 삶이 더 크게 다가온다. 고향을 잃었지만 고향을 떠나지 못한 사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사람, 그 삶의 궤적이 시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귀에는 아직도 “저녁답에 밥 먹어라 부르는 엄마 목소리”와 “자박자박 골목을 밟고 오는 가장의 발자국 소리”가 남아 있다. 결국 화자의 기억에 남는 것은 적벽보다 그녀의 이야기이다. 이는 풍경보다 사람을 먼저 발견하는 김지헌 시인의 시선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한 시선은 「꽃구경」에 이르러 하나의 선언으로 완성된다. “우린 모두 꿈속에 사는 사람 꽃”이라는 구절은 이번 시집의 핵심을 함축한다. 꽃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꽃이 된다. 꽃마다 사연이 있듯 사람마다 이야기가 있으며, 사람의 삶 역시 꽃처럼 피고 지는 생명의 과정이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놓여 있다. 이렇게 김지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비로소 꽃과 사람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단계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시집은 생명 예찬에 머물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긍정은 언제나 죽음에 대한 깊은 연민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나민애는 이를 ‘식물적 상상력’이라고 명명한다. 식물을 기르는 사람은 꽃이 피는 순간뿐 아니라 시들어 가는 과정까지 지켜본다. 김지헌 시인의 시선 또한 그러하다. 그는 피어나는 생명만큼이나 스러지는 생명 앞에서 오래 머문다.
「눈사람」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녹아내리는 눈사람은 전쟁터에서 사라져 가는 이름 없는 병사들과 겹쳐진다. 화자는 눈사람을 바라보며 “지금 지구 한쪽에서 죽이고 죽어 가는/ 이름 모를 병사”를 떠올린다. 눈이 녹아 사라지듯 병사들의 삶 또한 허망하게 스러져 간다. 시인은 그 소멸의 과정을 끝까지 바라본다.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죽음 앞에서 이처럼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다.
「단풍 조문객」과 「벚나무 장례식」 역시 같은 계열에 속한다. 낙엽이 지는 모습을 장례의 풍경으로 읽으며, 꽃이 진 벚나무를 통해 “하얀 소복 행렬”이 지나간 장례식 풍경처럼 “세상을 하직한 사람들”을 애도하는 태도는 시인의 세계관을 잘 보여 준다. 그의 시에서 죽음은 특정 존재의 사건이 아니라 생명 전체의 문제이다.
이러한 애도의 정서는 「무연고자 김경철 씨」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름 없이 죽은 무연고자에게 경찰이 붙여 준 이름 ‘김경철’. 그것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사회에서 지워진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다. 시인은 그 이름을 시의 제목으로 삼음으로써 잊히고 사라진 존재를 다시 불러낸다. 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란 눈물 뚝뚝 떨구며 고개 넘는/ 감국 조문객”은 인간 대신 들꽃이 애도의 주체가 되는 장면이다. 더구나 그를 애도하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 감국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이 외면한 죽음을 들꽃이 대신 기억하는 장면은 이 시집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생명을 향한 시인의 연민은 인간의 경계를 넘어 자연 전체로 확장된다.
그렇다면 생명과 죽음이라는 두 축을 연결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다림이다. 이 시집의 가장 중요한 정서는 기다림에 가깝다. 생명을 발견하는 일도, 죽음을 애도하는 일도 결국 기다림이라는 태도 속에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작인 「노랑어리연꽃」은 그러한 기다림의 시학을 가장 아름답게 구현한 작품이다. 시인은 금이 간 수반에 물을 채우며 노랑어리연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꽃은 끝내 피지 않는다. 기다림은 실패로 끝난 듯 보인다. 하지만 작품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나는 지금껏 무얼 기다렸던 걸까요”라고 묻고, 그것이 결국 “평생을 걸어오면서도 보내지 못하는 그리움”이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기다림은 결핍이 아니라 존재를 향해 마음을 열어 두는 방식이며, 삶을 견디게 하는 정신적 자세이다.
「노동요를 듣는 아침」과 「살구가 입을 닫았다」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반복된다. 길고양이 미미의 체온을 느끼며 생명의 소리를 듣고, 식음을 전폐한 길고양이 살구가 다시 먹기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결국 시를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시인은 생명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시가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살구가 입을 닫았다」의 “꽃 같은 문장도 같이 와줄 거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생명과 시가 하나의 근원에서 온다는 믿음을 보여 준다. 생명과 시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사랑’과 ‘사람-꽃’이 하나로 만나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은 생명을 향한 태도이고, 사람-꽃은 그 사랑이 도달한 깨달음이며, 기다림은 그 둘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의 방식이다. 김지헌 시인의 시는 결국 기다림을 통해 생명을 이해하고, 생명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며, 사람을 통해 다시 시에 도달한다.
『다정이 찾아왔다』는 생명의 시집이면서 동시에 기다림의 시집이다. 또한 사람을 꽃처럼 바라보는 인간애의 시집이며, 죽어 가는 존재들을 끝까지 기억하려는 시집이다. 무엇보다 이 시집은 생명을 생명답게 바라보려는 한 시인의 오랜 수행의 기록이다. 김지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꽃을 피우는 일을 넘어 사람을 꽃으로 피우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꽃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풍경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의 감각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우린 모두 꿈속에 사는 사람 꽃”이라는 깨달음과 “꽃 같은 문장도 같이 와줄 거라는” 기다림은 결국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그의 시가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머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배롱나무 아래 수반 하나
지난봄 노랑어리연꽃 한 포기를 얻어 수반에 심어 놓고는 아침저녁 줄어드는 물을 채우며 기다렸지요 수반 아래 금이 가 있는 줄은 모르고 물을 채우며 배롱나무 꽃 아래 노랑어리연꽃이 참 잘도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이미 꽃을 본 듯 웃음이 배곤 했지요 가끔은 고양이들이 그 물을 먹고는 수반 속 구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가기도 했는데, 마치 오래전부터의 약속인 듯 말이죠 한여름엔 수반의 물이 더욱 빠르게 줄어 동네 고양이들이 다 몰려든 줄 알았어요
고양이들이 분주할 때면 쏜살같이 물까치가 다녀가기도 했지요
노랑어리연꽃은 다녀갈 생각이 없는지 배롱나무만 꽃비를 흠뻑 뿌려 주네요
밑동에 금이 간 수반을 메우곤 아침저녁 물을 흘려 넣으니 종일 구름이 머물다 갑니다 여전히 노랑어리연꽃은 와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배롱나무 아래 수반은 이 말 저 말 받아 적느라 깜빡 했을까요
어느덧 배롱 꽃도 지고 마당의 나무들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에 드는 시간
빈 하늘만 수면 위에 머물다 갑니다
나는 지금껏 무얼 기다렸던 걸까요
60년대식 연애처럼 서성거리다 입도 못 떼던, 한 계절이 다 가도록, 아니 평생을 걸어오면서도 보내지 못하는 그리움이었을까요
- 「노랑어리연꽃」
아룬 제간은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인도적 지원 어드바이저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이 되어 버린 가자 땅에서
목숨 걸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날마다 굶어 죽거나
공습으로 죽임 당하거나 미쳐 버리거나
삶의 터전은 이미 부서지고 파괴되어
부모 잃은 아이들 배회하고
무표정의 사람들 목숨 연명하고 있는 땅
이 세계는 어차피 모순덩어리라며
어떤 사람들은 가볍게 말하기도 하지
작은 모니터를 통해 처참하게 파괴된 가자 땅 들여다보며
밥 먹듯 아무렇지도 않게 전쟁놀이를 보는 일
아프다는 말에 내성이 생기듯
슬픔도 이미 무딘 칼날 되어
가자 사람들에게 싸구려 희망 하나쯤 던져 주고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척
배부른 오늘이 미안해 애써 핑계를 찾으며
부풀어 오르는 꽃눈에 시선을 주다
늙은 퇴역 군인처럼 길고양이나 챙기며
다만 누군가 혁명을 일으킨다면
그땐 두 손 들고 뛰쳐나갈 수도 있다고
말이나 쏟아내겠지
- 「그 땅에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