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시선을 돌리면, 내 곁에 다른 생명이
이 책의 문을 여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꽃마리다. 원하는 곳으로 움직일 수 없는 이 한해살이풀은 짧게 사는 것도 서러운데 너무 작아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찾아와 준 개미 덕분에 다른 꽃마리와 꽃가루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고, 꽃가루를 옮겨 준 다른 생명 덕분에 비로소 씨앗을 품게 된다. 생을 이어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꽃마리를 비롯해 느티나무, 토끼풀, 벌, 비술나무, 소나무, 구상나무, 민들레 등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 속 주인공은 바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이다.
‘환경지킴이’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산림생태학을 전공한 후, 숲의 회복을 돕는 연구자가 된 저자는 수많은 생명이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알게 모르게 서로를 돕고 돌본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무엇보다 미래의 우리 지구를 지켜 내야 하는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동화와 시를 지어, 김수나 작가의 따뜻한 그림, 그리고 이야기와 관련한 칼럼과 짝을 이루어 함께 책에 실었다. 저자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이야기를 읽고 지금까지 눈길을 주지 않았던 주변의 뭇 생명을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그 생명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각 글의 끝에서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함께 들으면 좋은 음악, 찾아가 보면 좋은 곳, 함께 나누어 보면 좋은 이야기 등 책 속 이야기가 더 깊고 풍성해질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제안한다.
생명이 주는 위로, 치유하는 이야기의 힘
치열하게 경쟁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돌보고 돕는 자연의 생명이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은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토끼풀이나 이끼처럼 평범하고, 흔하고, 지극히 작은 것들이 모두 저마다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을 볼 때면 누구나 존재 가치가 있고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위로받기도 한다. 수십 년 넘게 뿌리내리며 살다가 폭풍우에 몸통이 꺾였어도 그 밑동에서 다시 새순을 낸 비술나무의 모습은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팥배나무의 열매를 먹은 딱새가 새로운 땅에 팥배나무를 자라게 한다는 이야기는 우리도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삶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저자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지은 글로 마무리된다. 집 근처 논두렁과 산 사이에 대도시를 잇는 4차선 도로가 들어서면서 마을과 마을을 둘러싼 자연환경이 파괴되던 때의 이야기다. 중학교 2학년 때 ‘환경지킴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이후로 늘 ‘환경연구원’이 꿈이었던 저자의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글이다. 저자가 지은 이야기와 글 속에는 숲의 회복을 도우면서 자연과 자연,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깨진 관계 회복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는 한 연구자의 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책 속에서
개미가 떠나기 전, 꽃마리에 해 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 꽃가루는 다른 꽃마리에 가 닿게 될 테고, 그럼 그 꽃마리도 비로소 씨앗을 품게 될 거야.” “아하!” 꽃마리는 잠시 꽃을 피웠다가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생명을 살게 하는 귀한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꽃마리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재잘거리며 저마다의 시간을 충만하게 누리는 다른 생명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보아 온 이끼는 그늘지고 차가운 곳에 터를 잡고 그곳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 보이지 않던 작은 생물들이 이끼 주변으로 모여들어 쉬어 가기도 합니다. 갈 곳 잃은 씨앗을 촉촉하게 품어 주기도 합니다. 차가운 시멘트 계단 틈에도 이끼가 오랫동안 머무르다 보면 누군가 싹을 틔울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겨납니다. 이끼에는 분명히 풍요롭게 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나무의 죽음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속단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제 가망이 없나요?’ 열심을 품고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나 상하고 시들어 버린 마음을 마주할 때면 종종 속으로 되뇌곤 합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끝인 것만 같았던 그 지점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하고, 허물어진 마음에 새살이 돋아나기도 했기에 지금껏 삶이 계속되었습니다. 스스로 감각하지 못했던 잠재력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함부로 ‘끝’을 속단하지 않을 일입니다.
워낙 거칠고 험준한 아고산 지역에서 가까스로 생존하고 있는 아고산 상록 침엽수종이 소실될 경우, 이를 대체하는 수종이 과연 숲을 이룰지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아고산 지역 산림의 수종 구성과 구조를 포기해도 될까? 기후변화는 인간의 활동으로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에 어쩔 수 없이 노출된 산림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생물종을 돌볼 책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이는 제가 아고산 상록침엽수림에서 어린나무의 발생과 진계생장을 도울 방법을 찾는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다양한 생물적·비생물적 요소가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는 산림 생태계처럼 우리 사회도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설사 내가 알지 못하는 생명일지라도 서로 구하고 지켜 주려는 다정한 마음이 널리 퍼지면 좋겠습니다.
아고산 일대는 가뜩이나 물도 부족하고 토양의 깊이도 깊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이 거세게 불어 나무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어렵게 살아남은 나무들이 죽으면 그들이 이루고 있던 숲도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면, 나무가 만들던 그늘이 없어지니 토양이 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토양 환경이 달라지고, 그 아래 뿌리를 내린 다른 나무들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그 나무 덕분에 조성된 환경에 기대 살던 다른 나무와 크고 작은 생물의 생존에도 위협이 됩니다. 그러니까 한 나무의 죽음은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나만 살아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 돌보기 위해 우리가 가진 것과 마음을 할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