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한 떼의 궁녀들이 돈화문 앞에 자리 잡았다. 그러곤 두루마기를 풀어 앞에 펼쳐놓고는 희정당을 향해 세 번 절하였다. 궁녀들은 일제히 호곡했다. 초심도 엎드려 울부짖었다.
“폐하! 어찌하여 길을 가지 않으셨사옵니까? 폐하!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외면하셨단 말입니까?”
초심은 폐하를 한껏 원망했다. 그러다 불현듯, 초심의 얼굴에는 가을 서리같이 차가운 결의가 서렸다. 그러더니 초심은 낮고도 단호하게 혼잣말했다.
“조선 남정네들을 믿고 어찌 살겠나이까? 소녀는 폐하가 못 이룬 걸 이루고자 하나이다!” -본문 중에서
대한제국 최후의 황제인 순종황제는 대한제국이 일제에 일제 병합되기 1년 전인 1909년 1월과 2월 사이, 남과 북으로 국경 지대인 대구·부산·마산과 개성·평양·신의주 등을 순행한다.
서울-부산 간 순행을 남순행이라고 하고, 서울-신의주 간 순행을 북순행이라고 한다.
순종황제의 순행은 겨울철에, 그것도 열차를 타고 한반도의 가장 먼 곳을 두 차례나 갔다 온다는 점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순종황제의 순행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통감부, 그리고 일본 정부에 의해 치밀하게 사전 모의 되어 진행된 것이었다.
즉, 이토와 일본 정부는 조선을 병합하기 위한 전 단계로서 조선 내 격화되던 의병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반일 감정을 친일로 전환시키키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순종황제의 순행을 기획한 것이다. 즉 무력적 방법과 유화적 두 방법을 통해 조선의 식민지화를 가속화하려는 계획이었다.
그 무렵, 대한제국 정부 요직은 친일매국 세력이 장악했고, 국내는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이래 일본에 빌붙어 영화를 누리려는 친일매국 세력만 근 30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토는 순종황제의 순행을 통해 대한제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자 한 것이다.
고종황제는 이태 전인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해외 특사를 파견해 일제에 의해 강제 체결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조선의 주권 회복을 열강에게 호소하려 헤이그 밀사 사건을 전개한다. 그런데 이 밀사 사건이 벌어지기 5년 전인 1902년 6월 고종은 지금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황제직속 비밀첩보조직인 제국익문사를 설립한다.
제국익문사는 일본 도쿄·오사카·나가사키는 물론, 중국 베이징, 상하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뤼순 등까지 통신원을 파견하여 활동하였다. 이 비밀조직은 조선 침략을 가시화한 일본의 야욕을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음은 물론이다.
이 첩보조직의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고종황제의 러시아 망명을 계획한 것이다.
소설은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일본에 의해 태황제로 물러나게 된 고종황제가 나라를 구하려는 한 가닥 희망으로 임진왜란 시기 선조 임금이 조정을 둘로 쪼개는 분조(分朝)를 단행했던 것처럼, 이토가 기획한 남순행, 북순행 시 순종황제가 국외로 탈출하여 망명 정부를 세울 수 있도록 제국익문사 요원들에게 명하는 것으로 사건은 전개된다.
황제는 제국익문사의 명망 기도로 남순행과 북순행 시 일제의 손아귀에서 탈출하고자 하고, 황제를 돕는 궁 밖의 요원들과 궁내의 지밀상궁, 초심 등의 맹활약이 펼쳐진다. 또한 주변 인물로는 공분, 시종무관 등 개인적 욕구로 국외 탈출을 시도하고자 하는 인물들까지 뒤얽혀 사건은 긴장 속으로 빠져든다.
한편, 오로지 부귀영화만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에 철저히 충성하는 이완용 등 친일 매국 대신들은 반민족적 행위의 한 집단을 이루며 대한제국을 끝내 멸망으로 밀어 넣고자 한다.
황제는 과연 탈출에 성공하여 망명 정부를 세우고 일제와 싸워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제국익문사 요원들은 향후 어떤 활동을 전개하게 될까?
제국익문사와 연계된 대한의군(大韓義軍)의 독립투사들은 어떤 거사를 도모하게 될까?
역사 퇴행의 시대, 소설 《순행열차》는 우리 민족에게 각성과 반추의 장을 제공한다.
분노와 울분, 결심과 반성, 의지와 도전의 대파노라마를 녹여 낸 소설 《순행열차》는 과연 어디를 향해 달릴 것인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장대한 스케일의 역사소설 《순행열차》는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작이다.
지은이의말
"1909년 1월부터 2월까지 순종황제는 남순행과 북순행을 하게 되는데, 이는 일제가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을 계기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의 내외권력을 완전 장악하려는 기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고종에 이어 순종이 즉위하자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순종황제 즉위식을 통해 일제의 보호정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황제를 강제로 순행케 하는 기획을 시도한 것이다.
순행 당시 민간에서는 ‘황제 납치’ 의혹이 일며 반발하거나, 안창호에 의한 일본기 거부 사건이 발생하는 등 애국충정 활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일제가 주도한 순행이라 할지라도 나는 당시 민중 차원에서 이 순행의 이면을 보고자 하였다. 여기에 고종의 비밀결사단인 제국익문사의 활동을 접목해 순종황제의 순행과 망명 기도 사건을 극화하고자 했다.
특히 궁녀 초심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나의 민중 및 여성에 대한 사상의 반영이며, 시대적 요청이라 생각한다. 이완용의 망령이 배회하는 시대, 이 작품은 하나의 뚜렷한 메시지가 될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