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기적처럼 맨땅을, 앙상한 가지를 뚫고 나오는 작고 여린 싹 앞에서 알 수 없는 감동과 희열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자연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뭔지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인간은 ‘생명’에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사바나 신드롬’이라는 개념을 들어 인류 문명 초기에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자연에게 의지하고 자연과 싸우며 생활했던 선조들의 경험이 우리의 유전자 속에 지워지지 않는 오랜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고 말한다. 에드워드 윌슨은 ‘바이오필리아’라는 개념을 말하며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 사랑’의 본능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인간도 생태계를 이루는 동물 종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 생명의 네트워크 안에 속해 있다는 연결 감각은 지금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언제든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의 자연 사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나, 생각하다 산골 마을에서 보냈던 유년 시절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오랜 시간 도시에서 살면서 자연과 멀어져 있었던 그는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나고 자랐던 자연의 넓고 따뜻했던 품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주말이면 근처 산과 들을 다니면서 잊고 있었던 자연을 향한 마음을 자각했고, 소소하게 텃밭을 일구고 정원을 가꾸며 다시 자연과 이어지기 시작했다. 눈길을 주지 않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자연의 크고 작은 생명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각각의 생명이 지닌 고유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자연을 향한 사랑을,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신비함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 색연필과 펜을 들었다. 오랜 시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계절마다 변화하는 주변 자연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고, 서툴지만 연필과 펜, 색연필로 그 모습을 본 대로 느낀 대로 세밀하게 그렸다. 그리고 그때그때 느꼈던 감정을 글로 기록해 나갔다. 이 책은 수십 년간 그렇게 지속해 온 저자의 내밀한 자연 사랑이 담긴 글과 그림의 기록이다.
그는 자연에서 멀어져 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내 안의 바이오필리아 본능을 일깨울 수 있도록 자신이 터득한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들려준다. 키워드는 생명, 사랑, 아름다움, 가꿈이다. 생명을 경외하는 마음 품고, 사랑하는 대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하라. 그리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숨은 아름다움을 찾고, 결국 자연을 그저 바라보는 자리에 있지 말고 자연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은퇴 후 마련한 강원도의 나래실아침농원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이들도 아주 작은 텃밭과 정원 안에서도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조차도 인간에게 귀한 삶의 지혜를 가르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살아 있다’는 것,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게 하는 큰 스승이자 친구다.
책 속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풀과 나무 들은 그 모양새나 살아가는 모습이 그 어느 것 하나도 서로 같지 않습니다. 저마다 각별한 존재 이유와 독특한 생존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삶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보통 한 묶음으로 초목(草木, 풀과 나무)이라 불리곤 합니다. 모두 ‘식물’로 분류되는 근원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나의 자연 사랑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다양성과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그들 공통의 ‘절대적인’ 속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풀과 나무가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이유는 소유의 삶이 아닌 존재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존재하는’ 삶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비 오는 때를 위해 저축하지도 않고, 자선에 뜻을 두고 부를 축적하지도 않습니다. 소유하지 않고 쌓아 놓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청아하고 소박한 모습을 유지합니다. 결코 군림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명예나 영광 등 군더더기에 욕심이 없다 보니 언제나 진실하고 순수합니다. 그 대신 나무와 풀은 지금 존재하고 있는 바로 여기 이 순간, 현재의 삶을 아주 철저하게 살아갑니다.
새로운 이름 하나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또 다른 각별한 상징과 형상을 만들어 함께 시간을 공유하며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름에 투영되어 있는 우리의 정서와 감성, 자연의 생명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부르는 이름과 다른 이들이 부르는 이름을 서로 견주어 보면서 재미와 해학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세상이 또 하나 열립니다.
자연은 드러나는 모습보다 더욱더 치열한 삶의 각축을 벌이며 맹렬하게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터전이지만,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해치지 않고 꿀을 따는 벌과 나비처럼 아름다운 상생의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자연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아낌없이 비우고, 미련 없이 버리면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또 다른 삶을 이어 나가는 소생의 기적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되면 잽싸게 거두어들이고 때가 되면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이 군더더기 없는 자연의 아름다운 본성입니다.
호사를 누리던 눈은 이제 쓸쓸함을 느낍니다.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찾아들고 겨울 삭풍의 거친 염려에 마음이 문득 공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 틈새의 계절을 좋아합니다. 내내 수선스럽기만 했던 사위가 조용해졌습니다. 가을 안개로 희뿌옇던 시야가 말끔해집니다. 떨어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낙엽들도 어느 구석에 자리를 잡고, 마른 풀대들도 몸집을 줄여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때는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절입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는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