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 25여 개의 잠언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남긴 말은 그 분량이 상당하다. 「주요 교설」, 「바티칸 어록」, 그리고 세 통의 편지까지 더하면 그의 사유를 담은 핵심 구절만 해도 120개를 훌쩍 넘는다. 이 책은 철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는 박은미가 에피쿠로스의 구절 중 현대인에게 필요한 지혜를 담은 25여 개를 자신의 관점으로 골라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일상을 위한 철학>을 비롯하여 일반인을 위한 철학 강의를 활발히 운영해 온 박은미는 ‘허무하게 느껴지는 인생에서 나다움을 찾아가는 방법’을 소개하는 『나답게 산다는 것』, ‘마음을 힘들게 하는 나쁜 생각 습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아주 일상적인 철학』 등을 집필하며 30여 년간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선 저자다.
따라서 이 책에 수록된 에피쿠로스의 어구는, 2300여 년 전 철학의 쓸모에 처음 주목한 현자의 일침을 오늘날 독자들의 필요에 최적화된 형태로 번역한 결과에 가깝다. 예를 들어 박은미는 에피쿠로스가 남긴 ‘어떤 사람들은 일생 동안 삶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우리 각자가 죽음의 약을 마시고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라는 잠언을 소개하며, 습관적인 삶은 본질적인 만족감을 주지 못하므로, 삶을 생생하게 살기 위하여 죽음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정립해야 한다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그리하여 독자는 철학박사인 저자가 가진 전문성을 신뢰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에 직접 말을 거는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나라는 개인에서 너라는 타인까지 도달하는 여정
이 책은 에피쿠로스의 말들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현대인의 마음이 겪는 문제의 순서를 따라 4단계로 재배치했다. 1장은 소비, 착각, 열정과 같은 길잡이 키워드를 통해 결국 “내가 원하는 게 진짜 내 욕망인가?”라는 물음으로 수렴한다.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 그 욕망을 실현한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가를 물어본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_43쪽
2장은 욕망을 걷어낸 자리에서 소유의 덫과 괴리를 직시하고, 성찰과 인식을 통해 마음의 소리를 듣는 단계로 나아간다. 욕망을 줄이면 결핍이 아니라 내면의 풍요로 이어진다는 역설이 이 장의 축이다.
내가 나를 무엇으로 채울까에 대한 중심이 잡혀 있지 않으면 남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게 됩니다._118쪽
3장에서는 불안을 넘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공포인 죽음 앞에 선다. 욕망을 비우고 공포를 직면한 자리에 남는 것은 텅 빈 고독이 아니라 타인과의 진실한 관계다.
배뇨통과 설사가 극한의 고통으로 계속 나를 따라다니고 있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우리가 함께 나눈 철학적 대화들을 떠올리며 내 영혼이 느끼는 기쁨 덕분이지._209쪽
끝으로 4장은 존중, 공존, 보시와 같이 현대에 익숙한 개념을 끌어와,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묻는다.
손해 볼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는 타인의 세계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나라는 개체의 경계를 넘어서야만 우정과 사랑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_247쪽
철학적 사유로 이끄는 쉽고 명료한 질문들
박은미는 ‘알아들을 수 있는 철학’을 지향하는 철학자다. 따라서 지난 30여 년간 철학을 파고들면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저서를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 경험에서 체득한 섬세한 감각은 책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철학박사로서의 신뢰성을 유지하면서도 복잡한 개념 없이 쉽게 말을 걸듯 쓰인 문장으로 다가온다.
내가 무엇으로 나를 채울지에 대한 중심이 잡혀 있으면 나로서 행복할 수 있게 됩니다. 남들이 나를 부러워할지 말지 남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요. 결국 우리는 진정 나를 채울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공허를 느끼게 됩니다. 타인의 시선에 따르는 욕망은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지 않습니다._27~28쪽
각 편의 끝에는 독자가 자신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질문을 놓았다. 예를 들어 “남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샀다가 후회한 적이 있나요?”, “혹시 좋은 점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나쁜 점에만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나요, 아니면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서 눈치를 보고 있나요?” 등이 그러하다. 읽는 것만으로 뜨끔하게 만드는 이 질문들은 막연한 불안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내면을 깊게 파고든다. 이러한 질문들에 자신만의 답을 궁리하는 과정이야말로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는 방법이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흐름을 따르면 에피쿠로스의 처방을 옛 지식으로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자신의 선택으로 인생을 채우면 더 생생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들의 평가와 관련하여 실망과 실패를 경험할지라도 자신이 원했던 것이니 그 길을 꾸준히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_30쪽
사실 물건이 주는 만족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집중해서 할 일, 즉 나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 일을 하는 재미를 느끼면서 살면 물건에 대한 욕심 때문에 괴로워지는 일은 줄어듭니다._47쪽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의 가치는 그것이 사라져야 알게됩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는 노래 가사도 있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의 가치를 충분히 알기 어렵다는 진실을 알아차리려면 자신의 생각의 우물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서 에피쿠로스가 철학을 해야 한다고 한 것이죠. 철학은 자기 생각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넘어서는 것이니까요._62쪽
에피쿠로스는 철학적 논의에서 패한 사람은 새로 배운 바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논의에서 패했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모르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변호인, 내면의 참모를 둘 줄 아는 것은 인생에 꼭 필요한 지혜입니다._131쪽
사회적 인정을 곧 자신의 정체성으로 이해해버리면 변덕스런 사람들의 기준 때문에 공허해지게 됩니다. 이렇게 공허함을 껴안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다정해지기는 어렵습니다. 경쟁에서 낙오되어 버린 나 자신이 밉고 나를 배제한 사회에 원망감이 들고 나를 이겨버린 경쟁자가 싫어지니까요._169쪽
에피쿠로스는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서 유한한 시간보다 더 큰 쾌락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오늘 하루 행복하기만도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면 오히려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의 좋은 점을 보는 눈을 키우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_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