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프루스트, 퀴리와 친구들 1900-1918
2권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바로 현대 미술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이름, 피카소가 1900년 파리를 방문한 것이다. 자신의 그림 한 점이 만국박람회에 걸린 것을 기뻐하던 이 열아홉의 풋내기 청년은, 그럼에도 이미 당시 자화상에 ‘나, 왕’이라고 쓸 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고, 이 주문은 곧 현실이 된다.
1권에서 새로운 예술을 꿈꾸며 전통주의자들과 싸운 예술가들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각자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2권은 이들이 다진 토양 위에 현대적 예술이 만개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사도라 덩컨, 스트라빈스키, 샤갈, 장 콕토 같은 이들을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이 ‘빛의 도시’로 이끌리듯 찾아온다. 파리에는 영감을 주는 미술관들과 예술적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 그리고 돈 많은 후원자들이 있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던 싸구려 목조 공동주택 ‘바토 라부아르(세탁선)’로 모여들었다. 피카소를 필두로 막스 자코브, 모리스 드 블라맹크, 키스 반 동겐, 모딜리아니 등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각자의 예술을 개척하게 되고 이곳은 영광의 이름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40여 년간 지속된 평화는 최초의 세계대전으로 깨지고 만다. 모든 것이 전시 체제에 돌입하여, 조르주 브라크, 장 르누아르, 기욤 아폴리네르는 직접 전선으로 나갔고, 디자이너 폴 푸아레는 군복을 만들고, 과학자인 마리 퀴리는 부상병들을 위해 이동식 엑스레이 팀을 꾸렸다. 당연히 예술이라는 것은 만들어지기도 팔리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파리는 언제나 축제』
-헤밍웨이, 샤넬, 만 레이, 르코르뷔지에와 친구들 1918-1929
3권『파리는 언제나 축제』에서 파리는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한번 황금기를 맞이한다. 황금시대, 재즈 시대, 아우성치는 시대, 광란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는 극적인 이름만큼이나 역동적인 시대였다. 4년간 지속된 전쟁은 모든 것을 뒤바꾸었다. 예술계는 거의 멈춰 섰지만 과학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게 되었다. 샤넬과 르코르뷔지에의 성공은 전쟁 이후 급변한 사회를 대변하는 예이다. 코르셋 없는 편안한 티셔츠라든가 남성복에서 영감을 얻은 실용적인 샤넬의 옷들은 패션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고, 전쟁으로 많은 집들이 파괴된 현실에 대응해 르코르뷔지에가 개발한 ‘돔-이노’ 시스템(표준화된 모듈식 주택) 역시 이전 건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획기적 제안이었다.
파리 역시 큰 변화를 맞게 되었는데, 전쟁 후 파리를 거쳐 간 미군들의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미국인들이 밀어닥친 것이었다. 그중에는 헤밍웨이와 만 레이, 조세핀 베이커, 콜 포터도 있었다. 이들은 자유분방한 이 도시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조국을 떠나왔고,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현대적 발명으로 생겨난 전통적이지 않은 분야도 점차 예술로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화가를 꿈꾸던 만 레이는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을 카메라로 찍기 시작하다가 본격적으로 사진작가가 되었고, 장 르누아르는 영화에 푹 빠졌다가 직접 제작자로 나서게 된다. 모리스 라벨은 녹음 기술에 관심을 가져, 자신의 주요 작품 대부분을 생전에 녹음한 최초의 작곡가가 된다.
굴복하지 않는 예술가들의 분투
예술가 중에는 초기부터 인정받고 성공을 거두는 이들도 있지만, 뛰어난 능력에도 기성 권력에 부딪쳐 험난한 시기를 보낸 이들도 많다.
1권은 그야말로 인상파 화가들이 ‘살롱전’으로 대표되는 기성 화단과 치르는 기나긴 전투라 할 수 있다. 거듭되는 낙선에도 꾸준히 살롱에 출품했던 마네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모네와 모리조, 르누아르, 시슬레 등의 화가들은 인상파 전시회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로댕조차 서른다섯에 이르러서야 살롱전에 입선했고, 2년 뒤에 출품한 <청동시대>는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모델에 직접 석고를 입혀 본을 떴다’는 소문이 돌면서 미술계에 파문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러한 논란은 결과적으로 그의 명성에 득이 되었다.(1권 122쪽)
모리스 라벨과 같은 작곡가는 그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콩세르바투아르에서 두 번이나 퇴학을 당했으며, 계속된 도전에도 로마대상 경연에서 결국 탈락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탈락했을 때 그는 이미 <물의 희롱>, <현악 4중주> 등의 곡으로 평판을 얻고 있었기에 이 사건은 스캔들로 비화되기까지 한다. (2권 184쪽)
르코르뷔지에나 만 레이처럼 처음에는 그림 쪽에 야망이 있었지만,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이들도 있었다. 르코르뷔지에는 건축가로 일하면서도 진정으로는 화가가 되길 원했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1차 대전의 정전협정이 조인된 날은 하필 그가 전시회를 열기로 한 날이었고, 이 때문에 그의 전시회는 연기되고 만다. 어쩌면 그가 미술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현대 건축은 한 발 빨리 변화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위대한 작품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재미는 역시 위대한 예술가들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에펠탑처럼 한 권 전체에 걸쳐 완성되어 가는 대작을 보는 것도 즐겁고, 피카소의 <인생>이나 조이스의 『율리시스』 같은 잘 알려진 작품들의 뒷이야기를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자유의 여신상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는 대개 거대한 이상과 가치가 담기기 마련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을 축하하는 프랑스인의 우정의 선물이었지만, 이는 동시에 혁명과 반동 사이에서 부침을 거듭해온 프랑스 국민들에게 ‘자유’라는 이정표를 세우는 행위였다. 이 여신상의 외관은 바르톨디의 것이었지만, 내부 구조는 에펠이 담당하여 거대한 외형을 떠받칠 철탑을 고안했다.(1권 178쪽)
한편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또 한번의 만국박람회에 무언가 ‘진짜 볼만한 것’을 내놓자는 제안에서 시작된 에펠탑은 원래 ‘에펠’탑이 아니었다. 애초에 철탑 아이디어를 냈던 것은 에펠의 조수들이었는데, 에펠 본인은 처음엔 이 계획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으나 당시 박람회 행정위원장이 이 제안에 크게 흥분하자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재고하여 특허권을 사들였다.(1권 244쪽)
피카소의 청색시대 걸작으로 평가되는 <인생>은 충격적인 개인사와 그에 얽힌 복합적 감정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나체의 한 남자와 여자가 나온다. 남자는 피카소와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온 친구 카사헤마스이고, 여자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 제르멘이다. 카사헤마스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제르멘으로 인해 절망에 빠진 나머지, 여러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를 쏘고 뒤이어 자기 자신에게도 방아쇠를 당긴다. 다행히 제르멘은 살아났고, 이후 피카소의 애인이 된다. <인생>에 엑스레이를 쬐어 보면 카사헤마스의 그림 밑에 원래 피카소 자신을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의 의미는 피카소 자신조차 확실히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2권 146쪽)
책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프랑스를 여행할 때 꼭 들르는 곳이 아마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일 것이다. 이곳은 이후 파리에 거주하던 영미 계통 작가들의 삶을 크게 바꾸었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운명도 바꾸었다. 미국 잡지에 연재되던 이 작품은 ‘외설물’ 혐의로 고발되어 게재 중단의 위기에 처한다. 출판업자를 구하지 못하여 좌절한 조이스에게,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창업자인 실비아 비치가 출간을 제안한다. 출판 경험도 자본도 없었던 이 용감한 여성 덕분에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끝까지 써 내려갈 수 있었다.(3권 160쪽)
편견을 부수며 전진한 굳센 여성들
급격한 변화의 시기, 전위적인 시기였다고는 해도 선구적인 이들이 길을 트기는 녹록지 않았고, 여성들에게는 이 길에 ‘여성’에 대한 제약이 더해져 더욱 험했다.
그러나 앞서 나간 여성들은 어떤 편견과 부당한 대우에도 굴하지 않았다. 시리즈 전체에 걸쳐 위풍당당함을 보여준 대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햄릿 같은 남자 배역도 마다하지 않았고, 조각에도 열정을 보였으며, 만국박람회 때 선보인 열기구를 타보는 모험을 한 뒤,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하고야 마는 성미였던 것이다.
상류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난 베르트 모리조는 일찍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부모는 그런 그녀에게 미술 선생을 구해주었다. 상류 계층의 여성이 ‘교양으로’ 그림을 배우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욕구가 아마추어리즘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그녀의 부모는 난감해했다. 모리조는 자신의 성별 때문에 동료 화가들과 함께 어울리기 어려웠음에도 자신만의 비전과 테크닉을 개발했다. 결혼 증명서와 사망 증명서에 그녀는 ‘무직’으로 기록되었으나, 그녀가 그린 뛰어난 작품들은 현재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에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걸려 있다. (1권 30쪽)
마리 퀴리에게도 학업과 연구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폴란드 출신이었는데, 당시 바르샤바 대학교는 아예 여학생을 받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장장 5년 동안 가정교사로 일한 끝에 그녀는 파리로 유학을 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생활고와 임신과 출산 등 온갖 어려움에도 연구를 계속하여 방사능을 발견했다. 그러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마리의 기여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노벨 물리학상에서 그녀를 배제하려 했다. 다행히 이런 시도를 미리 안 피에르가 손을 씀으로써 마리는 의당 받아야 할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녀를 향한 학계의 차별은 계속 이어진다.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죽은 후에 피에르의 소르본 교수 자리를 마리에게 정식으로 주지 않고, 교수직은 공석으로 두되 ‘마리가 피에르를 대신하여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다. 끝없는 차별에도 두 개의 노벨상을 탄 그녀는 선구자들은 인생의 아늑한 구석에 정착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