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추천사
오늘날 한국 교회는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본질과 공동체의 건강성에 대한 여러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건강한 교회 행복한 성도』는 매우 시의적절한 문제의식과 의미 있는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 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으며, 그가 제시하는 해석과 대안들 또한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신학적 근거와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 바라기는 이 책이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와 목회자들에게 유익한 대화의 출발점이 되고, 한국 교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김진섭 박사(현 사단법인 이스라엘포럼 대표, 전 백석대학교 서울캠퍼스 부총장 겸 신대원장)
이 책은 또한 ‘복음을 전하는 설교’, ‘신뢰를 세우는 교회의 재정’, ‘함께 어울리는 교회 공동체’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모두 깊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학자답게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문제들을 차분히 풀어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행간마다 나의 생각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 부디 이 책이 한국 교회에 작은 울림이 되어, 더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성도라면 누구나 곁에 두고 읽으며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책이 되기를 기대한다.
- 김상윤 박사(고신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
책 속에서
교회와 문화의 관계는 처음부터 긴장 속에 놓여 있었다. 복음은 언제나 특정한 언어와 관습, 감수성 속으로 ‘번역’되어 전달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 문화를 분별하고 비판하며 새롭게 하는 힘을 지닌다. 창세기에 주어진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창조 세계를 책임 있게 돌보고, 그 안에서 문화를 형성해 갈 사명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벨탑 사건은 문화가 언제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우상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 변화를 받으라”(롬 12:2)고 경고하며 교회가 세속적 가치에 동화되지 않도록 권면한다. 동시에 바울이 아덴에서 ‘알지 못하는 신’의 제단과 그들의 시인의 글을 인용하여 복음을 전한 것처럼(행 17:23, 28), 기독교는 시대와 문화의 언어를 활용하여 복음을 전달해 왔다. 복음은 문화를 접촉점으로 삼되, 그것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그리고 계시록이 증언하듯, 마침내 모든 민족의 영광과 존귀는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하나님께 드려질 것이다(계 21:24-26). _ 57p
한국 교회가 마주한 핵심은 “어떤 형식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예배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있다. 예배의 주체는 무대가 아니라 회중이며, 음악이나 무대, 조명과 음향은 회중이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돕는 반주자여야 한다. 이 정의가 분명히 서지 않으면 어떤 형식도 쉽게 공연성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정의가 확립되면, 곡 선정이나 키, 편성, 조도, 음량, 좌석 배치 같은 세부 요소들은 모두 “회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가”라는 단 하나의 기준 아래에서 조절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예배당은 서구 교회와 다르다. 장방형 구조, 경질 마감재, 발코니와 유리 벽면은 저역 잔향을 과도하게 만들고 설교 명료도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외국 라이브 공연에서 쓰이는 높은 음압레벨과 서브우퍼 세팅을 그대로 적용하면 회중성이 약화되기 쉽다. 한국 교회는 지역적 특성에 맞게 저역 비중을 제한하고, 무대 중심 소음을 최소화하며, 조도를 높이는 설계를 먼저 채택해야 한다. _ 98-99pp
따라서 설교를 들을 때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 설교는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만약 설교가 단지 “더 열심히 해라, 더 잘해야 한다”라는 요구로 끝난다면 그것은 복음적 설교가 아니다. 복음적 설교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고, 은혜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한다. 설교를 듣고 난 뒤 무거운 죄책감만 남는다면 우리는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라 율법의 채찍을 맞았다. 그러나 감사와 자유, 은혜 안에서 새롭게 살고 싶다는 기쁨이 생긴다면 우리는 복음을 들었다.
복음적 설교란 결국 성경 전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설교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새로운 짐을 지우지 않고, 이미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선포한다. 그것은 성도를 억누르지 않고 은혜로 자유케 하며, 억지 순종이 아니라 감사와 감격 속에서 자발적인 순종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마다 복음을 사모해야 한다. 복음은 처음 믿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믿은 성도에게도 날마다 새롭게 들려야 할 소식이다. _ 110-111pp
한국 교회의 재정 문제는 여러 사건을 통해 공적으로 드러났다. 사건 하나하나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교회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 동시에 이런 사건들은 한국 교회, 특히 대형 교회 구조가 안고 있는 취약성을 보여준다. 교회가 커지고 재정이 늘어날수록 재정 권한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의사 결정 과정은 불투명해지며, 결국 돈의 유혹에 휘말릴 가능성은 더 커진다.
그러나 문제는 거대 사건들만이 아니다. 교회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제도와 문화 자체가 이미 돈과 권력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겉으로는 ‘전통’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뿌리에는 교회의 신학과 영성보다는 사람의 이해관계와 조직적 편의가 자리하고 있다. 예컨대 은퇴 후에도 예산과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원로목사 제도, 목적과 사용처가 불분명함에도 성도들에게는 의무처럼 요구되는 각종 헌금 항목의 난립, 그리고 교회의 공공성과 공동체성을 무너뜨리는 세습 문제는 모두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이것들은 단순한 행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영적 지표다. 제도가 왜곡될수록 교회의 본질 역시 흐려지고, 결국 제도는 교회를 섬기는 장치가 아니라 교회를 얽매는 구조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과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오늘의 교회에 어떤 상처를 남기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교회의 회복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_ 159-160pp
교회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고전 1:2)로 규정되는 신앙 공동체이다. 이는 교회가 본질적으로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구별된 공동체로 세워졌으며, 그 정체성은 단순한 사회적 결사체와 구별된다.
성경적 관점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엡 1:22-23)으로 묘사되며, 그 안에서 성도들은 서로 연결되고 지체로서 역할을 감당한다. 또한 교회는 섬김의 리더십(막 10:45)을 통해 세워지고, 제자도의 길을 따라 성화의 삶을 지향하며(마 28:19-20; 살전 4:3), 나눔과 돌봄을 실천하는 사랑의 공동체로 존재한다(행 2:44-47). 동시에 세상을 향해서는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아(마 5:13-14) 복음을 증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사명을 맡는다.
따라서 교회는 단순히 제도적 조직이나 외적 성장의 지표로 환원될 수 없으며, 교회의 본질과 사명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과 구속사적 부르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교회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곧 교회가 교회답게 존재하기 위한 토대이자, 세상 속에서 그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_ 298-299pp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 일은 담임목사나 목회자 몇몇이 감당할 수 없다. 모든 성도가 자신의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 가능해진다. 예배의 회복, 의사결정의 참여, 치유와 돌봄, 세상 속 사명, 영적 성숙, 이 모든 것이 평신도의 몫이다.
교회의 미래는 목사의 카리스마에 달린 것이 아니라, 평신도의 각성에 달려 있다. 우리가 깨어날 때, 교회는 다시 본질로 돌아갈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교회 공동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_ 32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