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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봄이 보洑이다
하늘이 뿔났다
와온에서는 지금
거꾸로 집
스님과 민달팽이
능소화의 투병일기
밥알의 힘
엄마가 젖다
하룻밤 사이에
윈도브러쉬 같은 당신
마지막 품삯
종이꽃이 말을 걸다
라스트 콘서트
등
효도꽃
소금창고

제2부

세상에서 제일 어린 의사
충분하고도 남는 당신
타이어를 갈다
폰, 야단났다
신생아실 앞에서
노인복지관
갈현毛
구치소 앞 은행나무
딸에게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살아가는 이유
노년의 선물
노인요양원
아버지와 남산
엄마의 여름나기
새래 다짐
판공성사


제3부

숭늉 말씀
삼월의 눈
여름
대설
여름캠프
가을 타는 사람들
고추는 금추
느린 도착
간월호
파래소 폭포
비오는 하산길
초승달
하지夏至
삼매三昧
오월의 담장
산불쌍불


제4부

된서리
영업비밀
재개발
달개비길의 서사
출입금지
폐묘
똧파리와 명찰
후루룩, 벚꽃
시인의 우편함
염습
뒷담화
신문을 끓다
새납마을


해설/ ‘생존자 편향’과 가족이라는 오래된 탯줄 -김정수
저자 소개
저자 : 이순우
시인 이순우는 대구에서 태어나 2008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자 소개 더보기
출판사 서평 더보기
출판사 서평
이순우의 첫 시집 『종이꽃이 말을 걸다』는 삶의 여정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둔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고, 그 주변부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동등한 서사의 대상으로 끌어올린다. 가령 「염습」에서 중요한 것은 6·25전쟁의 역사적 의미나 전쟁 영웅이 아니라 그 전쟁을 몸으로 통과하다가 죽은 장 요셉의 시간이고, 「달깨비길의 서사」와 「노인 복지관」에서는 울산 산업화의 성공 신화가 아니라 그 성공의 현장에서 청춘을 소진한 사람들의 퇴근길 풍경과 세월에 굴복한, 늙고 병든 몸이다. 그들의 삶에서 시인은 영원한 관찰자면서 타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시인은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시간 안으로 시선을 이동시켜 현재와 과거의 존재를 만나게 하는 매개 역할도 한다. 하지만 퇴근길 풍경을 복원하거나 늙고 병든 몸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울산 산업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현재 노인이면서 동시에 청춘을 조선소에서 보낸 젊은 노동자다.
-김정수(시인)

[시인의 말]

시집을 털었다.
시를 처음 배울 무렵,
우표처럼 사 모았던 시집들의
먼지를 털었다.
먼지 속에서 고분처럼 입을 닫고 있던
나의 시들도 털었다.
오래 묵은 종이 냄새
꼬깃꼬깃한 지폐를 펼쳐
창구에 들이미는 것처럼 부끄럽지만
한참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아들딸에게
늙은 어미의 첫 시집이 용기가 되어 기쁘다
‘시는 체험이다’
시 공부 첫 시간에 릴케의 말로 길을 열어주신
그리고 긴 시간 묵묵히 지켜봐 주신
김성춘 스승님께도
큰 절로 깊은 감사 인사를 올린다.

2026년 가을, 이순우


책 속에서

하늘이 뿔났다


하늘도 사람처럼 늙는가 보다
구름이 맨홀 뚜껑처럼 값나간다면
도둑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만큼
삼산동 하늘의 키가 줄었다
주상복합 공사장 한켠에 내놓은 짜장면 쟁반 위로
신문지 대신 덮인 하늘이
원조국밥 할매처럼 허리가 굽었다

매사에 미신을 믿는 허리가 굽은 우리 엄마
여행지에서 사 갖고 온 명아주 지팡이를
지팡이는 앞서가는 물건이라
자식이 사 갖고 오면 자식을 앞세우는
큰 불행 닥친다며
진저리치며 내던지시든 그날의 지팡이 같은
자고 나면 쑤욱 커 버리는 명아주나무 같은
초고층 건물들이 여기저기
늙으신 하늘 밑에 지팡이처럼 서 있는데

울 엄마처럼 기겁을 하며 하늘이 노하셨나
오늘 아침,
빌딩 벽을 기어오르는 전광판 뉴스들이
화산재를 펑펑 날리고 있다

--------------------------------------------------
능소화의 투병일기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며 나아가는
인부들의 삽질 같은 넝쿨 잎사귀들
어림잡아 십 미터는 훨씬 넘어 보이는데

요양병원 지붕을 넘어 한참 높은 옹벽 위로
무엇이 궁금해서 저리 올라가는 걸까
소음을 내지르는 자동차 바퀴들을
결박을 하고자 뻗어 나아가는 걸까

짜장, 오늘 아침 투병을 끝낸
능소화꽃 한 무더기가 우리를 놀래켰다
자동차전용도로 방음벽 끝에
진행을 막는 붉은 신호등처럼 환하게 매달려 있다
악바리 같은 근성이 피워낸 소담스런 꽃무더기들
그 첫 시작이 알고 싶다
원발 암의 뿌리를 찾듯 추적추적 파고 싶다

꽃에 얽힌 사랑의 전설 따위는 아무도 궁금치 않아
흙 한 줌 없는 시멘트 옹벽을
생명줄인 양 부여잡고 아득한 높이까지
기어코 올라선 투지의 푸른 손바닥들
쉴 새 없이 바통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어깨 다독이며 일궈낸 승리의 화관이여
그 아름답고 고귀한 다홍빛 화관을
날마다 주저앉고 싶은 암 환자들이
저마다 창밖으로
목을 빼고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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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알의 힘



성가신 광고 문자처럼
연일 날아드는 폭염의 경고장에
7할이 소금물인 사람의 몸이
다시 짠물이 되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소금기를 뱉어낸 물고기들도
바다 위에 난민들처럼 허옇게 드러눕고
냉장고 속 푸성귀마저
이틀을 못 버티고 짙푸른 물로 돌아갔다

집을 비운 이박삼일 동안
항복을 모두 받아낸 붉은 킬힐의 수은주 앞에
쉰내도 한 점 없이
고슬고슬 감꼭지처럼 끝만 마른 밥 한 그릇
그 속에 담긴 이력이 물처럼 찰방 댄다

등허리가 타들어 가는 유월 염천에도
파릇파릇 어린 자식들 부둥켜안느라
발등이 퉁퉁 불어도 손 놓지 않는
무논의 들판처럼
고난 앞에 무릎을 더 바짝 세운 채
철벽을 치고 지켜낸 밥 한 덩이가 식탁에서
어미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다니

쳐진 목숨 일으켜 세우는 밥알의 힘에
폭염도 손을 들었나 보다
한 알 한 알 어미의 굳은살 같은
단단하고 위대한 모성의 힘 앞에서


-----------------------------------------------------

엄마가 젖다



똬리를 깔고 앉은 늙은 호박처럼
엄마의 속 빤스가 방석처럼 두툼하다
딸년도 몰랐던 딱한 속사정
덧대고 덧댄 그 두께에 빨랫줄이 휘청인다
줄을 잡고 몸을 털어 물기 가시면
뭉게구름처럼 일어났다가 먹구름처럼 주저앉는

엄마의 장마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달구똥마냥 질척이는 그녀의 시간들
꽃방석처럼 환하게 받쳐 줄
패드를 사러 대문을 나서는데
괘안타, 괘안타 엄마의 만류인양 비가 오네
질금질금,
실금이 간 시멘트 마당도 축축이 젖네

빈집을 홀로 지키고 선 엄마처럼
땡볕에 오래 서 있던 우산을 펴자
우산 속에도 비가 새어 들어온다
어쩌나?
뿔뿔이 흩어진 육 남매 자식처럼
엄마를 젖게 만드는 이 우산
엄마의 우산도 요실금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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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꽃이 말을 걸다



좁은 베란다에 담긴 동짓달 햇살 한 줌
입안에 톡 털어 꽃을 피운 종이꽃이
바스락, 바스락 말을 걸어온다

겨우내 웅크린 베란다를 환히 덥히려
홍등 같은 꽃잎 한 장도 떨구지 않는
너의 진짜 이름
네이버에 별 이름처럼 많기도 한데

이국의 소녀 이름 같은 부겐빌레아
잠비아의 국화라니 마음이 더 당긴다
내가 매달 바람에 부친 배춧잎 한 장에
웃음을 보내주는 잠비아 아이들 사진처럼
바스락대는 너의 소리가 말을 걸어온다

분홍빛깔 꽃 포대가 꽃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서 제일 작은 꽃들
포대 안에 보물처럼 숨어있다니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랍비처럼 일깨워 주는 종이꽃의 언어를
오늘에야 비로소 해석했다

누구를 안다는 건
책표지 아닌 책갈피 속을 열어보는 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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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고도 남는 당신



보름달 환한 밤은 길을 잃어도 두렵지 않고

겨울 볕 쨍한 툇마루는 문 없이도 따뜻했지요

바람이 드센 파도는 나를 서둘러 깨우고

구름은 막막한 하늘에 길동무가 되었답니다

지친 날개 쉬어 갈 나무 땅 밑에서 자라게 하시고

시멘트 뚫고 올라온 민들레꽃 한 송이에

가던 길 멈추고 무릎을 꿇어 내려다보게 하셨지요

힘들었던 모든 것을 힘이 되게 해 주신

오직 당신이라는 존재 하나로

내 생은 이미 넘치도록 충분합니다

언젠가 한 번은 만날 당신 생각에

죽음의 먼 길도 여행처럼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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