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오늘도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했지만,
정작 그 문장 안에 내가 없다고 느낀다면.
천성호 작가의 6년 만에 돌아온 산문집이다.
그는 그동안 크고 특별한 이야기를 모으기보다,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가는 일상의 시간 곁에 오래 머물렀다. 『내 이름은』에는 그렇게 건너온 낮과 밤이 담담한 독백처럼 이어진다.
이 책은 ‘나’라는 사람을 하나의 말로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직함으로, 역할로, 관계로 불리며 조금씩 달라지는 얼굴들 속에서 흘려보낸 순간들을 하나씩 불러낸다. 일터에서의 긴 하루,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허기,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마음의 흔들림까지, 삶의 가장자리에 남아 있던 감정들이 문장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산문들이 향하는 곳은 분명하다.
무엇이 되었는지보다, 어떤 이름으로 하루를 견뎌왔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렇게 불려온 수많은 이름들이 결국 하나의 자신을 이루고 있었음을, 작가는 자신의 일상으로 보여준다.
책장을 덮을 무렵,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오늘 나는 어떤 이름으로 살아왔는지, 그 모든 이름을 데리고 다시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을지를. 『내 이름은』은 그렇게 수많은 이름을 지나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귀환의 기록이다.
책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기록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기록하는 일에는 서툴다. ‘주임’, ‘대리’, ‘과장’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맡은 역할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거울 속 얼굴이 낯설어진다. 감정은 보고서 문장처럼 간결해지고, 생각은 점점 무뎌진다. 그러다 문득 ‘나는 누구였지?’라는 질문이 떠오르지만, 바쁜 하루에 밀려 곧 사라진다.
ㅡ‘내 목소리를 찾아서’ 중에서
나는 이제 관계의 숫자를 세지 않는다. 대신 그 사이에서 내가 어떤 얼굴로 머무는지를 본다. 모래는 손을 세게 쥐면 흘러내린다. 관계도 그렇다. 여유와 거리, 그 사이에서 오래 남는 인연이 있다.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머무는 관계를 소중히 한다.
ㅡ‘숫자가 다가 아니야’ 중에서
쓸모 있다는 감각은 거창한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건넨 작은 한마디, 내 손끝의 조용한 정성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드는 순간, 그때 비로소 조용히 피어나는 감각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일은 높낮이를 잃고 대신 온기라는 결을 갖게 된다.
ㅡ‘쓸모없는 직업은 없다’ 중에서
삶이란 그런 것 같다. 어디에 있든, 어떤 선택을 하든 스트레스는 다른 얼굴로 늘 우리 곁에 머물게 마련이다. 자유롭게 살면 불안이 다가오고, 안정적인 삶을 택하면 억압이 따른다. 몸이 건강하다고 마음이 늘 편한 것도 아니고, 마음이 평온하다고 몸이 항상 건강한 것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건 삶의 형태나 위치가 아니라, 그 모든 모순 속에서도 몸과 마음이 공존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ㅡ‘전신적 스트레스’ 중에서
사랑이든 일이든, 혹은 누군가의 문장 하나라도 마음이 기울어지는 날이 온다면, 그건 휘청이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온기를 품은 무언가에 조용히 닿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날엔, 눈물이 흘러도 괜찮을 것 같다. 조용히 흘러가는 하루의 강물 속에서 나도 어딘가 생생하게 부딪히고 있다는 작은 방증일 테니까.
ㅡ‘가끔은 격렬히 치이고 싶어’ 중에서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스스로를 규정한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 앞에서, 미리 선을 긋고 그 안에 머문다. 나 역시 오래 그랬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선이 내가 만든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ㅡ‘스스로 규정하지 말 것’ 중에서
꿈이라는 건 온전한 형태를 갖추기 전까지는 쉽게 녹아버리는 성질이 있다. 꿈은 손 안에서 모양이 잡히기 시작할 때가 가장 연약하고, 가장 쉽게 상처받지 않던가. 조급한 마음에 억지로 완성하려 애쓸수록 도리어 쉽게 무너져 내리곤 한다.
ㅡ‘눈사람은 냉동고에서 꿈을 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