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죽어가는 사람, 심장이 멎었던 사람이 며칠 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
지 모르게 멀쩡하게 살아서 말하는 상황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이러한 바이탈뽕을 나에게 한가득 안겨준 환자가 회복한 뒤 슬쩍 환자에게 말을 건넨다. “환자분! 저승사자 잘 만나고 오셨죠? 아직 순서가 안 되어 인생을 더 재미있고 멋지게 사시려고 다시 오셨죠?” 이렇게 말하는 나와 환자 모두 흐뭇한 미소로 서로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 이런 것이 있기에 외상외과 의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p.32~33
환자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내력을 같이버텨주는 것이야말로 외상외과 의사의 역할이다. 이 환자가 그 수많은 외
력으로부터 힘이 빠지지 않게 도와주고 함께 버텨주는 존재! 어떻게 보면 결국 환자가 살아나는 과정도 외력을 이겨내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한번 무너져버린 내력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더불어 버텨주고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내력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p.43
외과 의사 20년, 외상외과 의사로 15년을 살아가고 있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마음으로 지금 이것을 업으로 살고 있고, 앞으로 천재지변이 없는 한 다음 강산이 변하는 시점까지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우리나라에서 ‘권역외상센터’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된 시점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 일을 시작하였다. 어느 길이든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은 많은 고난이 있을 수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더 로드 낫 테이큰The Road Not Taken, 가지 않은 길)〉에서는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부분이 나온다. 두 갈래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내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한다. 나 또한 나의 선택으로 외상외과 의사의 길을 걷는 중이며, 이 선택이 올바르다는 것을 믿는다. p.78~79
오늘도 누군가의 가족을 수술한다. 내가 수술하는 환자는 곧 결혼을 앞둔 어여쁜 딸을 가진 아빠일 수도 있고, 아
내가 뱃속에 아이를 가진 30대 남편일 수도 있다. 꼭 수술이 아니더라도 중환자실에서 두 달 넘게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환자 또한 어느 아내의 사랑스러운 남편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환자와 가족을 함께 치료한다고 여긴다. 그날 나는 큰어머니 배, 뱃 속 간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수십 년간 괴롭힌 큰어머니 건강을 회복하게 해드린 것과 동시에 사촌 형님, 사촌 누님들과 우리 가족 모두를 치료해 드린 셈이었다. 이는 가족 모두가 당시 초보 의사였던 나를 믿어준 결과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을 치료하는 마음으로 따뜻한 손을 환자에게 한 번 더 내밀고자 한다. p,139~140
정신이 혼미하다. 순간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이러다가 내가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이런 순
간이 가장 서글프고 서럽다. 정말로. 이미 고갈된 내 몸속 포도당을 보충하기 위해 얼른 커피믹스 하나를 타서 벌컥 마신다. 카페인 덕분인지 커피믹스에 섞인 설탕이 내 뇌를 자극한 것인지 조금 정신을 차리고 다시 환자의 치료 방향 고민을 시작한다. 그 순간 그 오래전 선배 의사가 말씀해 주신 것이 떠올랐다. ‘환자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p.148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그 한 달이 열두 개 모이면 한 해가 된다. 내가 살아온 몇십 년도 이런 하루하루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지금 내 앞에 심장이 뛰고 있는 이 환자가 이곳 의료진들의 힘만으로 살아난게 아니다. 환자, 환자 가족과 함께 모두가 간절한 하루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치료하여 살아난 것이 분명하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안 감독님이 말씀하신 명언을 조용히 혼자서 소리 내어 말해본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p.160
나와 같은 외상외과 의사는 병원에서 개똥벌레 같은 존재다. 그렇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 누군가의 가족을 살려주
는 빛나는 반딧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어둠에서, 때로는 죽음 문턱에서 어느 가족, 환자에게 살아나는 길과 생존 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길을 안내해 주는 반딧불 말이다. p.174
‘내 몸에 묻은 피는 닦아내면 되지. 핏자국이야 얼마든지 닦을 수 있지. 환자가 살 수 있다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어느 영화 주인공이 카지노에서 과감하게 베팅하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누구든 한 번쯤 상상만 하는 그것이다. 과감하고 용감한 베팅은 아주 적은 확률로 일확천금을 주지만, 반대로 쪽박이 될 확률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언제나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현실에서 산다. p.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