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 『운명』을 출간하기까지의 책에 대한 책
‘노인’은 『운명』이라는 소설을 써 출판사에 투고하지만, 차가운 거절의 답신을 받는다. 소설 속 열네 살 소년 죄르지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행복하게 인식하는 장면이 거부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들은 홀로코스트를 우연적이고, 비인간적이며, 극복 가능한 역사로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항상 무언가를 선택한다.”라고 말하는 ‘노인’은 아우슈비츠를 벗어난 뒤에도 매일 지독한 후유증과 생활고 그리고 자신의 운명과 투쟁하며 소설을 쓴다. 이렇게 또 다른 소설 『좌절』이 탄생한다.
■ “아우슈비츠는 소화되지 못한 고기 완자처럼
내 위장 속에 있었다.”
『좌절』은 ‘운명 시리즈’ 중에서도 임레 케르테스의 인간적인 고뇌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주인공 쾨베시는 신문사, 철강 공장, 정부 부처에 취업하지만 어느 곳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해고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군 감옥의 간수로 일하게 되고, 어느 날 한 죄수의 따귀를 때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강제 수용소에서 인간에 대한 잔인한 폭력을 경험한 그가, 죄수에게 똑같이 폭력을 가한 것이다. 이 장면은 홀로코스트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이며,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무거운 운명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 “어쨌거나 나의 인생길을 걸은 사람은
여러분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이 소설에는 쾨베시와 그를 돕는 두 사람 시클러이와 베르그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에는 기묘한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쾨베시는 헝가리어로 ‘돌’을, 시클러이는 ‘암반’을 의미하며 베르그는 독일어로 ‘산’이라는 뜻이다. 쾨베시가 시클러이를 통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후 베르그를 만나 수없는 자살 유혹과 좌절을 이겨 내며 소설을 쓴다는 점에서 이들이 서로 다른 인물인지 아니면 한 인물의 세 자아인지 궁금증이 커져 간다. 돌이 암반이 되고 다시 산이 되는 것과 같이, 쾨베시에게 성장이란 포기하지 않고 소설을 쓰는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가 임레 케르테스가 헝가리 문단의 무관심과 생활고 속에서도 글쓰기를 계속해 나갔던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