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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의 3대 문호로 불리는
투르게네프 연작단편집
군주의 마음을 움직여 19세기 러시아 농노 해방을 이끈 책

“투르게네프의 단편들은 섬뜩하리만큼 아름답다.
투르게네프가 성취한 얼핏 단순해 보이는 경지에 이르려면 최고의 재능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을 재발견하는 셰익스피어의 천재성과 매우 흡사하다.”
-헤럴드 블룸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연 대문호 이반 투르게네프의 기념비적 걸작 『사냥꾼의 스케치』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 편의 문학 작품을 넘어, 러시아의 농노 해방(1861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펜의 승리’를 상징하는 텍스트다. 투르게네프는 5천 명의 농노를 거느린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머니의 잔혹한 학대를 목격하며 농노제의 부당함을 뼛속 깊이 새겼다.

그는 사냥꾼의 시선을 빌려 러시아의 광활한 자연과 그 땅에 뿌리 내린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관찰한다. 이 작은 ‘스케치’들은 출간 당시 러시아 사회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으며, 훗날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 해방을 결단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농노 해방이 선포되자 기차 안에서 만난 두 농민이 작가에게 다가와 절하면서 민중을 대신해 감사를 표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는 하나의 문학 작품이 어떻게 시대를 깨우고 마침내 한 민족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문학사적 기록이다.
목차 더보기
목차
호리와 칼리니치 7
예르몰라이와 방앗간 주인의 아내 30
산딸기 물 50
군(郡 ) 의사 68
내 이웃 라질로프 85
소지주 옵샤니코프 99
리고프 131
베진 초원 150
크라시바야 메치의 카시얀 184
영지 관리인 216
영지 사무소 240
비류크 270
두 지주 284
레베쟌 299
타치야나 보리소브나와 조카 321
죽음 343
노래꾼들 364
표트르 페트로비치 카라타예프 394
밀회 421
시그로보군의 햄릿 436
체르토프하노프와 네도퓨스킨 477
체르토프하노프의 최후 508
살아 있는 유골 566
바퀴 소리가 납니다! 590
숲과 스텝 615

작품 해설 627
작가 연보 657
저자 소개
저자 : 이반 투르게네프 (Ivan Sergeevich Turgenev)

1818년 10월 28일 러시아 오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귀족 가문 출신의 장교였고 어머니는 농노 5천 명이 딸린 영지의 지주였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혹되었지만, 성정이 잔인했던 어머니가 농노들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목격하면서 농노제를 혐오하게 되었다. 1833년 모스크바 대학교 문학부에 입학했고 이듬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역사철학부로 옮겼다. 1839년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하여 고전을 비롯해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며 서구 자유주의 사상을 체화했다. 1843년, 시인으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비평가 벨린스키를 만나면서 진보와 예술을 모두 추구하는 작가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에 평생의 연인이 될 오페라 가수 폴린 비아르도를 만났다. 청년기의 투르게네프는 게르첸, 바쿠닌, 벨린스키 등 자유주의자들과 교제하며 러시아 사회와 문화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나누었고, 장년기에는 급진주의자들의 견해나 태도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열정을 높이 평가하며 만남을 가지려 애썼다. 1871년 폴린의 집안과 함께 프랑스 부지발에 영구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플로베르, 졸라, 도데, 공쿠르 형제와 정기적으로 교류하고 종종 러시아를 방문하여 문학계에 관여했다. 1879년 러시아 농노 해방을 위해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883년 8월 22일 척수암으로 사망했으며 9월 19일, 유언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코보 묘지, 벨린스키 옆에 묻혔다. 대표작으로 『사냥꾼의 스케치』, 『루진』, 『귀족의 보금자리』, 『전야』, 「첫사랑」, 『아버지와 자식』, 『처녀지』 등이 있다.

역자 : 연진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아버지와 자식』,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러시아 단편집』, 『검은 말』, 『마지막 목격자들』 등이 있다. 202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기차 여행」이 당선됐고, 2023년 소설 전문지 《한국 소설》에서 주관하는 제74회 한국소설신인상에 중편 소설 「사육의 목적」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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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반 투르게네프
번역 연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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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노예의 비극과 자연의 찬미, 그 모순된 풍경이 일깨운 인간의 존엄

『아버지와 자식』, 『첫사랑』 등 투르게네프가 쌓아 올린 유려한 리얼리즘의 기원은 바로 이 초기작 『사냥꾼의 스케치』에 있다. 그는 사냥이라는 지극히 귀족적인 취미를 매개로 하여, 당시 ‘세례받은 가축’으로 취급받던 농노들을 비로소 ‘말하고 느끼는 인간’으로 문학의 무대 위에 복구시킨다.

투르게네프는 1840년대 중반, 자신의 재능에 회의를 품고 창작을 중단하려던 찰나 우연히 잡지 《소브레멘니크》의 청탁을 받는다. 그렇게 탄생한 첫 편 「호리와 칼리니치」는 러시아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관습적인 인물 묘사에서 벗어나,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농부와 자연과 동화된 시적인 농민의 모습을 스케치하듯 그려 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사회 비판적인 고발 문학에 그치지 않는다. 투르게네프는 화자 ‘나’의 시선을 최소화한 채, 카메라 렌즈처럼 대상을 응시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때로는 숨죽여 엿듣고, 때로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이 독특한 거리감은 독자로 하여금 러시아의 축축한 숲 냄새와 노예제라는 가혹한 현실 아래 놓인 민초들의 애환 섞인 노래 소리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집에서 빛나는 것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압도적이고도 정밀한 ‘자연’ 묘사다. 「베진 초원」, 「바퀴 소리가 납니다!」, 「숲과 스텝」 등에서 보이는 자연은 마치 순간적으로 동결되었다가 재탄생한 듯 영원히 빛바래지 않는 신비한 이미지로 제시된다. 이러한 압도적인 생명력을 풍기는 아름다운 자연은 단순히 배경에 그치지 않고, 그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농노들을 귀족과 다를 바 없는 존엄한 인간으로 한층 더 또렷하게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의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이 작품집을 두고 “섬뜩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평하며 그의 재능을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에 비견했다. 『사냥꾼의 스케치』에 담긴 스물다섯 편의 이야기는, 인간을 사유 재산으로 취급하던 비인간적인 시대 속에서도 결코 마르지 않는 인간의 생명력과 예술적 감수성을 증명하는 가장 투명하고도 단단한 기록이다.

■ 관찰하는 ‘눈’과 듣는 ‘귀’: 카메라 뒤의 사냥꾼이 포착한 인간의 초상

『사냥꾼의 스케치』는 제목 그대로 러시아 오룔 지방의 지주 귀족인 화자가 사냥길에서 마주친 인물들을 ‘스케치’하듯 그려 낸 소품집이다. 이 책이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대한 계보 속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회적 메시지 때문만이 아니라, 투르게네프가 창조해 낸 독특한 ‘화자’와 그가 구사한 치밀한 ‘장르적 변주’에 있다.

이 작품집의 화자인 ‘나’는 정체가 모호한 인물이다. 투르게네프는 남성이자 귀족이라는 것 외에 화자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겨 그를 하나의 거대한 ‘감각 장치’로 만든다. 화자는 사건에 직접 개입하거나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대신, 카메라를 든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대상을 응시한다. 특히 「예르몰라이와 방앗간 주인의 아내」나 「밀회」 등에서 보여 주는 ‘엿듣기’ 기법은 화자를 관찰자의 위치에 고정함으로써 독자가 인물들의 내면과 진실을 더욱 생생하게 대면하게 한다.

투르게네프는 매 단편마다 새로운 형식과 분위기를 도입해 독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가령 「베진 초원」은 한밤중 초원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사내아이들이 나누는 귀신 이야기를 통해 공포 소설의 형식을 빌려 온다. 낮의 활기찬 풍경과 대비되는 밤의 섬뜩한 미신들은 농촌 공동체의 심연을 보여 준다. 반면 「노래꾼들」은 두 노래꾼의 경연을 세밀하게 클로즈업하며 소설의 시간이 현실과 같은 속도로 흐르는 듯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이는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다큐멘터리적 묘사라 할 수 있다.

또한 투르게네프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고전을 러시아적 맥락에서 새롭게 변주한다. 스스로를 「시그로보군의 햄릿」이라 칭하는 인물은 비범함을 꿈꾸지만 끝내 열등감에 침잠하는 지식인의 초상을 보여 주며, 「체르토프하노프와 네도퓨스킨」의 주인공 체르토프하노프는 몰락한 귀족으로서 돈키호테 같은 광기와 고결한 도덕심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러한 인물 조형은 농노와 지주라는 계급 구도를 넘어 인간 보편의 심리와 실존적 고뇌를 꿰뚫는다.

투르게네프는 농노를 이상화하거나 연민의 대상으로만 가두지 않았다. 삼류 화가, 시종, 말 거간꾼 등 시골 사회의 온갖 군상이 내뿜는 속물스러움과 존엄, 공포와 유쾌함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려 냈다. 말해야 할 것을 섣불리 말하지 않고 오직 감각되는 것만을 묘사하는 이 독특한 거리감은 투르게네프가 자신의 예술에서 평생토록 지키고자 한 예술적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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